‘따르르릉.’ 요란한 화재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화재가 발생했으니 긴급히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뒤를 이었다. 형광색 조끼와 경광봉을 든 진행요원이 건물 곳곳에 긴급히 배치됐다.
10일 오후 2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제1공학관에서 열린 화재대피훈련 현장.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연구·실험실이 가득한 공대 건물에 대한 안전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되자, 대피 훈련이 실시됐다. 1997년 완공된 이 건물에는 기계항공공학부와 전기공학부, 컴퓨터공학부 등 공대 학과 연구실과 실험실 등이 들어서 있다. 화재에 취약한 기자재가 몰려 있는 공대 건물에서 대피 훈련이 실시된 건 세월호 침몰 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긴장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른한 오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연구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느긋하게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왔다. 공식 훈련 시작 시간은 오후 2시였지만 10여분 전부터 학생들이 건물 밖으로 몰려 나왔다. 막상 비상벨이 울린 뒤 복도로 나온 학생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전기공학부가 자리한 10층에 화재가 난 상황을 가정해 10∼15층 학생들은 옥상으로 대피하도록 유도했지만 상당수가 지시에 따르지 않고 아래층으로 이동했다. 계단을 올라가다가 포기하고 아래층으로 방향을 돌린 학생도 있었다. 몇몇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다 “화재 상황이라 운행하지 않는다”는 진행요원의 말을 듣고서야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이렇다보니 결국 훈련 시작 10여분 만에 ‘상황 종료’ 공지가 나왔다. 대피소에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던 학생들은 연구실로 돌아갔다. 서울대 관계자는 “스톱워치로 재보니 7분 만에 600여명이 모두 대피를 완료했다”고 했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야외 대피소에 머물던 한 학생은 “결국 형식적인 훈련 아니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학생은 “아무래도 훈련 상황이고 사전에 공지도 이뤄져 긴박함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었다”면서도 “그래도 불이 나면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는 알게 됐다. 전에는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훈련에는 공대 이건우 학장도 참여해 학생들과 함께 옥상으로 대피했다. 이 학장은 “세월호 참사 후 공대 연구실 화재 안전에 의구심을 느껴 이번 훈련을 기획했다”며 “이번에는 화재 대피 시스템이 취약해 인력으로 대피를 유도하는 등 약식으로 이뤄졌지만 오는 9월 연구실 시설점검이 끝나는 대로 자동 화재경보기 등 각종 관제 시스템을 보완해 다시 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화재 취약한 서울공대 대피 훈련해 보니… 긴장감 없이 느긋, 학생 상당수 지시 안따라
입력 2014-06-11 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