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꿈나눔 캠프] 진지하게 들어줬을 뿐인데… 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입력 2014-06-11 03:01
국민일보 꿈나눔 캠프 3기 학생들과 강사들이 빨대로 불어 탁구공을 상대 쪽으로 보내는 게임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계곡에 발을 담그고 담소를 나눴다.
마지막 날 밤 바비큐 파티 때는 고기를 구워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손을 잡고 서로를 의지해 동시에 일어나는 협동 게임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창밖만 바라봤다. 미간을 찌푸린 채 '오고 싶지 않았다' '누구와도 말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시위를 벌였다. 우람한 덩치의 성태(이하 가명·18)는 "캠프에 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리다 "하루만 있어 보겠다"고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국민일보 꿈나눔 캠프 3기는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성수동의 한 카페에 모이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자퇴를 신청한 아이들로 구성된 캠프였다. 결손가정·가정폭력·교우관계·학습부진 등 각종 문제들이 얽혀 꿈을 잃고 방황하는 아이들이었다. 2박3일 캠프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학교를 계속 다닐지 결정해야 할 기로에 놓인 아이들이었다.

짧은 캠프를 통해 아이들이 얼마나 달라질지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많았다. 그러나 꿈나눔 캠프를 거쳐 간 많은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은 이런 우려를 씻어주었다. 아이들은 진심으로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을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성태 어머니는 10일 본보와 나눈 전화통화에서 "무뚝뚝한 아이라 말수가 없는 건 여전하지만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캠프 뒤) 분명 좋아졌다는 걸…"이라고 말했다.

살얼음판 같았던 캠프

경기도 가평군 서울시학생교육원 에 마련된 캠프로 가는 승합차 안에서는 엔진 소리만 울릴 뿐 냉랭한 침묵이 이어졌다. 승합차가 시골길을 지나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가자, 한 아이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수련원 관계자가 "버스가 다니는 마을까지 가려면 1시간은 걸어가야 한다"고 말하자 낙담하는 듯했다. 여차하면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아이들은 예비군훈련에 억지로 나온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느릿느릿 움직이며 틈만 나면 자려고 했다.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던 수영(19·여)은 누군가에게 전화해 "왜 여기 가라고 했어"라며 화를 냈다. 고개를 숙이고 잠만 청하던 우영(17)은 강사들이 어깨를 주무르며 깨우면 한숨을 쉬었다.

치킨이 배달돼 아이들이 둘러앉았지만 성태는 치킨에 손을 대지 않았다. 강사들이 치킨을 계속 권유하자, 성태는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 뛰쳐나갈 기세였다. 성태는 다른 아이들이 치킨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야 마지못해 다리 하나를 집어들었다.

캠프 강사들은 긴장했다. 성태와 수영, 우영은 캠프 분위기를 흐릴지도 모를 요주의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밤이 되자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별이 빛나는 숲 속 산책로

밤이 되자 숙소인 통나무 방갈로로 이동했다. 풀냄새가 진동하는 초여름 숲길을 아이와 강사가 짝 지어 걸었다. 별이 제법 많았다. 북두칠성을 처음 본 아이도 있었다. 숲에서는 풀벌레소리, 계곡에서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1㎞ 정도를 걷는 동안 아이들은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산책을 마친 뒤에도 남자 아이들은 강사들과 5∼6명씩 우르르 방으로 들어가 얘기꽃을 피웠다. 여자 아이들도 강사들과 한 이불에 누워 정담을 나눴다. 낮에는 짜증이 묻어나는 얼굴이었지만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방에 불이 모두 꺼졌다.

다음 날에는 모두 형이나 언니, 동생 혹은 친구 사이가 돼 있었다. 성태는 양초공예 시간에 망치를 만들었다. "경찰 곤봉을 만들려고 했다"고 설명하자 다른 아이들은 "김밥인 줄 알았다" "다이너마이트나 월남쌈 같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자유시간에 여자 아이들은 '화장을 해 주겠다'며 강사들을 숙소로 데려갔다. 나머지는 계곡에 발을 담그고 전날 밤 못 다한 얘기를 나눴다. 바위틈에서 물뱀이 나왔다. 성태는 막대기를 들고 풀숲과 돌 틈을 헤집고 다녔다. 강사들이 달라진 아이들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줬을 뿐이다. 참을성 있게 들어주며 지지하고 공감해줬다. 다행히 어젯밤에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꿈을 얘기하며 웃고, 부모에게 받은 상처로 우는 아이들

수영은 소녀가장이다. 부모 이혼 뒤 할머니에게 맡겨졌지만 동생과 함께 나와 산다. 학교가 멀어 오전 5시에는 일어나야 하지만 깨워줄 사람이 없어서 자주 지각했다. 힘들게 학교를 다닐 이유도 찾지 못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꿈이지만 학교에선 도움을 주지 않는다.

수영은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생활한다. 메이크업을 배우려고 저금한 400만원을 아버지가 말도 없이 가져가면서 충격에 빠졌다. 수영은 "함께 사는 남동생(중2)이 전부다. 동생이 아니면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울먹였다.

우영은 열 살 때 부모가 이혼했다. 열 살 이전 기억은 없다고 했다. 어린시절을 끝내 말하지 않았다. 담당 강사는 "아이들은 부모 이혼에 대해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더 잘했다면 이혼 안 했을까' '나 때문은 아니었을까'라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지금은 할머니, 아버지, 누나와 살며 아버지는 곧 재혼한다. 새엄마가 데려오는 남매와 충돌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가족이 또다시 깨지는 고통이 두렵다.

성태는 "싫은 건 어떤 일이 있어도 안 해요"라고 말할 만큼 주관이 뚜렷한 아이다. 성태 담임교사는 "3월 1일부터 5월 14일까지 무단결석 15회, 무단지각 21회, 무단조퇴 2회로 제대로 출석한 날은 13일"이라며 "교복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는 성태를 지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런 성태도 캠프에서 장군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얘기한 뒤 태도가 달라졌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꿈을 얘기하자 다들 진지하게 들어주고 격려했다.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다시 시작하려는 아이들

대미를 장식한 것은 바비큐 파티였다. 아이들이 삼겹살을 굽고 강사들은 먹었다. 화로 두 곳에서 고기가 익어갔다. 두 화로에서 구워진 고기 맛 대결도 벌어졌다. 우영이는 집게와 가위를 들고 고기 굽기를 도맡았다. 스스로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던 우영이는 "고기를 맛있게 굽는다"는 말에 만족스러워했다. 캠핑 경험이 많은 강사에게 숯불을 다루는 방법, 고기 굽는 방법을 꼼꼼하게 물었다. 첫날 저녁 치킨을 거부했던 성태는 우영이가 구운 고기를 먹으며 말했다. "하루만 있다가 가려고 했는데 눌러앉았다.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친한 친구가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다음 캠프에 데려오고 싶다."

캠프가 끝난 뒤 2주가 지난 현재 3기 6명 중 5명이 학교를 다닌다. 성태의 어머니는 "지각도 안 한다.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말고 졸업 때까지 캠프 강사들과 관계를 유지했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성태는 캠프 첫날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캠프를 보낸 것에 강한 불만을 표했지만, 이튿날 "집에 가면 뭐 줄 거예요?"라며 농담을 건넸다. 담임교사는 "2학년에 올라와 제 시간에 등교한 적이 없었는데 달라졌다"며 "마지막 수단으로 캠프에 보냈는데 졸업하려는 의지가 강해진 듯하다"고 했다.

수영은 매일 아침 캠프에서 만난 강사들의 모닝콜로 일어난다. 지각한 적은 있지만 그래도 결석은 한 번도 안했다. 수영은 "밤에 얘기할 때는 상담이 아닌 수다를 떠는 것 같이 편했다"고 했다. 학교 상담교사는 "표정이 좋아졌다. (캠프가) 어떤 계기를 준 것 같다. 깊이 있게 자신을 돌아본 듯하다"고 평가했다.

우영은 "거의 학교를 안 갔었는데 지금은 이틀에 한 번꼴로 나간다"며 "졸업은 해야겠다. 더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우영과 단짝 친구로 함께 캠프에 왔던 태수(17)는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태수도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새엄마와 갈등을 빚어 방황했던 아이다.

가평=글·사진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