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의 포옹’… 제주발 여야 協治 첫 열매

입력 2014-06-11 03:17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오른쪽)가 10일 제주시내 ‘새 도정 준비위원회’ 사무소에서 신구범 전 지사의 인수위원장 수락 사실을 발표한 뒤 포옹하고 있다. 두 사람은 6·4지방선거에서 각각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경쟁했다. 연합뉴스

제주도에서 여야 '협치(協治)'의 첫 열매가 열렸다. 정책 탕평이라는 새로운 실험도 시도된다. 제주도에서 시작된 순풍이 육지로 북상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는 10일 지사직 인수위원장인 '새 도정 준비위원장'에 6·4지방선거 경쟁자였던 신구범 전 지사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신 전 지사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해 원 당선자와 맞붙었다 패배했다.

원 당선자와 신 전 지사는 제주시내 새 도정 준비위 사무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함께 나타났다. 일주일 전까지 치열하게 싸웠던 두 사람은 서로 포옹했다.

제주도 출신이지만 서울에서만 정치 활동을 했던 원 당선자는 신 전 지사가 제주도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도지사까지 지내며 지역 사정을 꿰뚫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또 제주도만의 독특한 특징인 '괸당'(친인척을 뜻하는 방언) 문화 속에 착근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런 원 당선자의 의중은 기자회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원 당선자는 "대통합과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제주도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신 전 지사가 최적의 대안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제주 도정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고 몸을 낮춘 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책통인 신 전 지사에게 삼고초려를 하며 감히 위원장 자리를 부탁드렸다"고 했다. 아울러 "신 전 지사가 편 가르기 정치를 극복하고 협치와 통합정치의 초석을 마련하는 데 동참해줘 고맙다"고 전했다.

원 당선자는 선거과정에서 나온 두 사람의 공약을 우선순위 없이 모두 논의하고 심사하는 정책 탕평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로 이견이 있었던 정책에 대해서도 검토와 토론을 통해 결론을 도출할 방침이다. 그는 "인사도 탕평이 필요하지만 정책도 탕평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지방정부 연정으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신 전 지사도 화답했다. 그는 "원 당선자가 인수위원회 이름을 '새 도정 준비위원회'로 결정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며 "새 도정의 세 가지 키워드인 도민·통합·변화를 아우를 것이며 그동안의 경험을 새 도정에 남김없이 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신 전 지사 행보에 대해 새정치연합 일각에서는 반발이 일고 있다. 새정치연합 제주도당은 지난 9일 "신 전 지사가 위원장직을 맡을 것이라면 당을 떠나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원 당선자는 "진영정치를 넘어서지 못하면 통합은 말뿐으로 그치게 되며 옳은 길이라면 누군가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신 전 지사도 "당(새정치연합)에서도 대승적으로 도민 대통합을 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면서 "원 당선자의 진정성이 확인된다면 인수위원장으로서 가교 역할을 해 달라는 도당 측의 주문도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나온 것은 여전히 새정치연합 당원이란 의미"라며 "새정치연합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제주도민과 제주도 발전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여야 합치가 걸음마 단계라 의미를 평가하기에 이른 감이 있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소홀히 대하고 정치적 분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지만 여야 정쟁에 대한 국민적 비난이 높은 상황에서 지방발 여야 합치가 새로운 권력분점으로 정착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