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미국인 여기자 석방을 위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한 데는 그에 대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호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10일(현지시간) 출간되는 회고록 '힘든 선택들(Hard Choices)'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비화를 공개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2009년 6∼7월쯤 미국의 고위급 특사단이 방북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 미국인 여기자를 풀어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여기자들이 속한 커런트TV 소유주인 앨 고어 전 부통령과 지미 카터 전 대통령, 2000년 평양을 방문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특사 리스트에 올랐다고 한다.
클린턴 전 장관은 그러나 "북한은 이미 특정한 방문객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바로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었다"며 "이것은 놀라운 제안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김정일은 남편 빌이 1994년 김일성 사망 때 조문 편지를 보낸 이후부터 분명한 호감을 갖고 있었다"면서 "물론 전직 미국 대통령의 구출 작전을 통해 국제적 관심을 끌고도 싶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전 장관은 "빌은 두 여기자 석방을 위해 방북하기를 희망했고 고어 전 부통령과 여기자 가족들도 이를 원했지만 백악관의 일부 참모들이 반대했다"며 "고위급 인사의 방북이 김정일의 잘못된 행동을 보상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고 동맹국들에 우려를 줄 수 있다고 여겼다"고 소개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에 같은 해 7월 말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점심을 함께하며 직접 이 아이디어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은 이것이 우리가 가진 최고의 기회라는 데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사안의 외교적 민감성을 감안해 클린턴 전 대통령 일행에게 "김정일과 사진 찍을 때 웃거나 찡그리지 마라"는 요지의 행동지침을 사전에 브리핑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2009년 방북 당시에도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무표정한 태도를 보였다는 관측이 대두됐었다. 이번에 각본에 따른 행동이었음이 확인된 셈이다.
2009년 2월 방한 당시 클린턴 전 장관은 북한에 대화를 공식 제안했다. 하지만 북한은 북·중 국경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미국 여기자 두 명을 체포하고 이어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미국이 악수를 청한 데 대해 북한이 주먹으로 응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아시아 중시전략'을 오바마 대통령이 개인적 관점에서 중시하고 있다고 했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아시아에 개인적 연대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략의 현실화를 위해 중국과의 불필요한 대립 없이 태평양 세력으로서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고 회고했다
전날 클린턴 전 장관은 ABC방송 앵커 다이앤 소여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의 2001년 퇴임 당시 우리 부부는 변호사 비용 등 수백만 달러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었다"며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비용과 첼시(딸)의 교육비를 대느라 암울하고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과 남편이 가계 수지를 맞추기 위해 각종 강연으로 20만 달러(약 2억원)에서 50만 달러(약 5억원)를 벌어들여야 했다고 설명했다. 남편의 불륜녀로 알려진 모니카 르윈스키에 대한 질문에는 "자신의 인생에 의미와 자족감을 갖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클린턴 2009년 방북, 김정일 호감 때문” 힐러리 회고록 비화 소개
입력 2014-06-11 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