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인사이드] ‘王수석’ 이정현의 존재감

입력 2014-06-11 03:15

지난 8일 사표가 수리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빈자리를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진원지는 청와대 안팎과 여권이고, 기류는 매우 다층적이다. 청와대의 대내외 소통이 앞으로 더욱 소극적으로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개선장군'처럼 당으로 복귀한 셈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우선 청와대 일각에선 왕(王)수석으로 불렸던 이 전 수석의 부재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여권 일부에서도 앞으로 청와대 내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격의 없는 소통이 더욱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10일 "앞으로는 더욱 대통령에게 직접 진언하는 참모들이 필요한데, 그럴 인사들이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전 수석은 널리 알려진 대로 박 대통령의 '입' '복심(腹心)'으로 불려왔다. 박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알고 또 이를 외부에 전달하는 것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의미에서다. 하루에도 수차례 대통령과 '양방향' 통화를 하고 대면보고 역시 쉽게 이뤄졌다. 때로는 진언도 마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석비서관 9명 중 박 대통령과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그가 거의 유일했다. 박 대통령과 10년간 인연을 이어오면서 당 수석부대변인, 공보특보, 공보단장, 대통령 당선인 정무팀장, 청와대 정무·홍보수석까지 맡아온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대부분 다른 참모들은 대통령과의 인연보다 전문성을 평가받아 일하는 전형적인 공무원 성격이 짙다. 따라서 대통령과의 격의 없는 토론이나 진언 등 양방향 소통보다는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원웨이(one-way)식' 소통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뜩이나 대통령에게 먼저 나서서 정책을 제안하거나 설명하는 적극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았는데, 앞으로 일방통행식 소통이 더욱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온다.

물론 청와대 내부적으론 상반된 분위기도 존재한다. 먼저 야권의 집중공격 대상이 됐던 이 전 수석의 사퇴로 청와대 입장에선 정치적 부담이 한결 덜해졌다는 기류가 흐른다. 정치권, 특히 야당으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게 됐다며 일부에선 내심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청와대 정무·홍보 업무가 이 전 수석의 '맨투맨(man to man)' 방식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이 전 수석을 바라보는 새누리당 내의 시선도 그리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 전 수석은 다음 달 치러질 재·보궐 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를 놓고 부담감을 표출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청와대에 대한 따가운 여론이 여전한 상황에서 사실상 경질된 이 전 수석이 곧바로 여당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다.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참모가 재보선 직전에 국회로 돌아와 출마 의사를 밝히는 것이 합당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재보선에서 정책이나 공약 대신 '정부 책임론' '중간평가론'이 다시 부각될 것이란 우려도 깔려 있다. 여권의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의 핵심 참모가 선거에 나왔을 때 출마지역에 상관없이 어떤 구도가 그려질지 먼저 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 전 수석 행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논리는 명료하다. 1년여 청와대에서 궂은일을 도맡아온 만큼 이제는 자신의 정치를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