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1학년인 민희(가명·여)는 중학교 때부터 자신의 몸에 문구용 칼로 상처를 내는 버릇이 생겼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습관적으로 상처를 내고 자신의 피를 보고나서야 칼을 멈췄다. 희고 가느다란 민희의 팔에는 깊게 베인 상처들이 군데군데 흉터로 남았다. 상처를 낼 때 아팠지만 가슴속에서 끓는 고통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민희는 중학교 시절 내내 우울증에 시달렸다. 모든 불행을 ‘내 탓’이라고 자책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울분이 쌓이면 자기도 모르게 자해를 했다. 어머니는 속이 상해 술을 마셨다. 어머니가 속상해하는 모습에 고통스러워하다 다시 칼로 자신의 팔에 상처를 냈다. 민희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만 하는 내가 밉다”고 했다.
3남매 중 막내인 민희는 늦둥이였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부모님이 자주 싸웠다. 어느 날 화가 난 아버지로부터 영문도 모른 채 매를 맞았다. 이후 말수가 급격히 줄면서 침울한 성격으로 변했다. 상처받는 게 두려워 마음의 벽을 만들었다. 남자친구가 생겼지만 좋아지기 무섭게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 민희는 이런 자신이 너무나 싫단다.
민희의 언니(27)는 “너 때문에 엄마 아빠 고생하시는데 잘 좀 해라”고 질책하곤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자책했다. 부모님의 고생이 내 탓이란다. 민희는 “나 때문에 엄마는 공장에 다니고, 막노동하는 아빠는 지방을 돌아다니느라 얼굴이 까맣게 탔다”며 고개를 숙였다.
학교만 가면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우는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아이들 때문에 학교가 더 싫어졌다. 미용사가 되고 싶어 특성화고교를 가고 싶었지만 성적이 안돼 일반고로 진학했다.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껴졌고 학교생활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자퇴를 결심했으나 학교를 그만둔 뒤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놓지는 않았다.
민희는 교사의 권유로 국민일보가 주최한 꿈나눔 캠프를 찾았다. 본보는 지난 3월부터 학교를 중도에 그만뒀거나 자퇴를 신청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존감과 꿈을 되찾아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본보 2014년 3월 10일자 1·8·9면 참조). 민희는 지난달 28일부터 사흘 동안 경기도 가평군 서울시학생교육원에서 진행된 3기 캠프의 일원이 됐다. 민희처럼 자퇴를 신청하고 학업중단숙려 중인 또래 학생 5명이 함께했다.
‘얼음공주’라는 별명답게 차가운 인상이었다. 마른 체형에 긴 생머리, 창백한 피부, 약간 올라간 눈꼬리…. 입을 다물면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캠프의 강사들은 조심스럽게 접근했지만 민희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2인 1조로 익숙한 이야기를 개작해 발표하는 ‘다시 쓰는 옛날이야기’ 게임에서는 강사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심청전을 고른 민희는 “심청은 유부녀였지만 바람피우는 나쁜 여자였어요”로 시작해 심청이 애인을 죽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위악(僞惡)’으로 자신을 감추는 듯했다.
민희는 캠프 첫날 밤 여자 강사와 밤늦도록 한 이불에 누워 대화를 하고 난 뒤 태도가 달라졌다. 이튿날 ‘라이프 곡선 그리기’에서는 자기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이 겪은 인생의 굴곡을 그래프로 그리면서 아버지로부터 매 맞은 시기를 포물선 가장 밑 부분으로 표현했다. 이내 감정이 격해지더니 눈물을 쏟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따라 나선 강사와 벤치에서 한참을 얘기하고는 “후련하다”며 돌아왔다.
이후 민희의 표정이 밝아졌다. 양초 공예시간에는 귀여운 강아지와 꽃을 만들고 자신의 ‘아바타’라고 했다. 친해진 여자 강사를 숙소로 데려가더니 곱게 화장을 해주며 즐거워했다. 강사는 “민희가 몰입하며 행복해했다”고 했다.
민희는 캠프에서 만난 강사들과 다짐한 약속을 실천하고 있다. 캠프가 끝난 뒤 열흘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출석하고 있다. 그 전에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 했던 민희는 “지각하더라도 꼬박꼬박 나갈 생각”이라며 “어제(9일)는 지각도 안 했다”고 말했다. 목표가 생겼다. 미용 특성화고 전학을 알아보면서 일단 학원에 다녀보기로 했다. 자신이 번 돈으로 부모님, 언니, 오빠와 함께 해외여행을 간다는 장기 계획도 세웠다.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얘기를 캠프에서 들어서 기뻤어요. 앞으로는 좀더 많이 웃으려고요.” 수화기 너머로 민희의 웃음소리가 해맑게 들렸다.
가평=글·사진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국민일보 청소년 희망 캠프-어나더 찬스] ‘얼음공주’ 민희 이야기 “미용 특성화高, 목표가 생겼어요”
입력 2014-06-11 0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