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축구 천재’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러나 감당하기 힘든 성장통을 겪었다. 약 2년 동안 그는 눈물 젖은 빵을 먹었다. 아스날, 셀타 비고, 왓포드 등을 거치는 동안 제대로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한 것.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의 경기력에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그러나 그는 2006 독일월드컵과 2010 남아공월드컵, 2012 런던올림픽에 출전해 최고의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은 그가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는 ‘홍명보호’의 센터포워드(중앙공격수)인 박주영(29)이다.
◇믿음에 보답하는 남자=런던올림픽에서 일본과의 3∼4위전을 앞두고 있던 박주영은 심경이 복잡했다. 플레이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팬들의 아우성 때문이었다. 그는 스위스와의 조별예선 2차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린 이후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대표팀이 4강까지 5경기에서 3골밖에 넣지 못하자 팬들은 공격진을 이끈 박주영에게서 그 원인을 찾았다. 홍 감독이 병역 연기 논란에 휘말렸던 자신을 옹호하며 올림픽에 데려온 터라 박주영은 마음고생이 더 심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의 심정으로 나선 한·일전. 박주영은 전반 37분 마침내 자신의 진가를 드러냈다. 후방에서 롱패스를 받은 그는 곧장 일본 진영으로 돌진했다. 일본 수비수 4명이 따라붙었지만 모두 허수아비 같았다. 박주영은 정교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을 넣고는 기도로 골 세리머니를 했다.
경기가 끝난 뒤 홍 감독과 박주영은 뜨겁게 서로를 껴안았다. “주영아, 모든 걸 이겨내줘서 고맙다.”
“감독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내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흔히 선수는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한다. 한 부류는 자신을 위해 뛰며, 다른 부류는 자신을 믿어 준 감독을 위해 뛴다. 박주영은 후자에 속한다. 박주영은 미국 마이애미에서 첫 전지훈련을 소화한 뒤 “공격수로서 골을 넣어 팀에 도움이 되고 싶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며 의욕을 보였다.
◇해결사 역할에 익숙한 남자=홍 감독이 선호하는 원톱 스트라이커는 폭넓게 움직이면서 연계 플레이와 마무리 능력을 두루 갖춘 선수다. 최적의 원톱 자원은 박주영이다. 지난해 7월부터 가진 평가전은 사실상 박주영을 대신할 원톱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하긴 하지만 박주영이 대표팀에서 가장 확실한 골 결정력을 보유한 공격 자원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박주영은 나이지리아와의 남아공월드컵 조별예선 3차전에서 후반 4분 프리킥으로 골을 터뜨려 한국의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끌었다. 런던올림픽 한·일전과 지난 3월 열린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도 중요한 순간 ‘원샷 원킬’의 골 결정력을 선보였다.
키가 1m82인 박주영은 높은 점프력으로 공중볼에 강한 면모를 보인다. 위치 선정이 정확한 편이고 헤딩 감각도 좋아 공중볼 싸움에 능하다. 시야, 패스, 판단력, 결정력 등 공격수로서의 재능을 거의 대부분 갖췄다. 동료들을 이용한 플레이에 능하며 배후 공간을 찾아 침투하는 능력은 국내 최고다. 박주영은 대표팀 A매치에서 통산 24골(62경기)을 넣었다. 대표팀 내 최다 득점 기록이다.
월드컵은 전 세계에서 축구를 가장 잘한다는 나라들이 모여 골을 넣거나 막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대회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7위인 한국은 득점 기회를 많이 잡을 수 없는 약팀으로 분류된다. 적은 기회를 효과적으로 살려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박주영이 답이 될 수 있다.
마이애미=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태극전사가 전하는 희망 메시지] ③ 최전방 공격수 박주영
입력 2014-06-11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