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동네북이 됐다. 얼마 전에는 오바마케어 가입 차질 등 내정(內政)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외교안보정책이다.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
쏟아지는 외교정책 비판에 오바마 대통령은 두 차례 ‘해명성 이벤트’를 열었다. 4월 28일 필리핀 방문 중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때로는 1루타를, 2루타를, 홈런을 날릴 수도 있지만 이 같은 외교정책은 실수를 피하게 해 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10년 전쟁을 막 끝낸 마당에 왜 그렇게 군사력 사용을 갈망하는지 의문”이라고 의회 내 강경파 등을 겨냥했다. 지난달 28일에는 웨스트포인트 미 육사 졸업식 연설을 통해 2년 반 잔여 임기 동안의 외교정책 기조를 설명했다.
이들 회견과 연설을 들으면 구구절절 옳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령 ‘과도한 군사 개입과 고립주의를 피한 중간의 길을 가겠다’는 대목을 보자. 아무도 이 선언의 정당성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이다.
‘미국의 핵심이익이 침해받을 땐 군사력을 사용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국제 현안은 다자주의 틀과 동맹·우방 간 협력으로 해결하겠다’는 구절도 그렇다. 현실적으로 다자주의 틀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에 미국의 주도적 리더십이 요구되는 것이다. 결국 이 말은 고립주의로 회귀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바로 받았다.
한 싱크탱크 연구원은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는 대학 교수의 ‘이론’ 강의 같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는 ‘오바마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등 비이성적인 지도자들의 존재를 좌시한 채 세계가 이성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행동하다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 외교의 곤경을 오바마의 잘못으로만 몰아붙일 순 없다. 그는 미국의 국력을 소진한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의 실질적 종전을 최우선 외교안보 목표로 천명하고 집권한 대통령이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의 말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치명적인 실책이다. 그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 징벌하겠다고 했다. 이는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오바마 자신이 설정한 ‘금지선(red line)’이다. 아사드는 이 금지선을 넘었지만 오바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할 경우 러시아에 강력한 보복을 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손목만 찰싹 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대통령의 신뢰 추락은 국제사회에 일파만파의 파장을 낳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직후 중국은 베트남과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에서 석유 시추에 돌입했다. 국제법상 분쟁해역이 분명한 데도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은 미 국방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은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라”고 미국을 공박했다. 미 법무부가 중국군 5명을 미국 기업 해킹 혐의로 기소하자 중국 정부는 국영기업에 미국 컨설팅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미국이 아시아에 설정한 ‘금지선’을 중국이 이제 대담하게 시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센카쿠열도와 동남아의 영유권 분쟁 중인 도서가 중국이 우선적으로 ‘파기’를 노리는 금지선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중국을 통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미국의 구상은 이미 실패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강(强) 대 강(强)’ 대립은 한국 외교엔 악몽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특파원 코너-배병우] 오바마의 ‘외교 수렁’
입력 2014-06-11 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