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중심으로 100년 넘게 영속하는 기업들의 숫자를 세어보면 2013년 기준으로 미국은 약 152개, 일본은 45개, 영국은 41개, 독일은 24개, 프랑스는 21개, 한국은 2개 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을 자치하더라도 일본이 다른 구라파 유수의 국가를 제치고 100년 이상 된 대기업들의 숫자가 월등히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기업이 영속하는 것은 기업의 시스템의 문제도, 기업의 리더십의 문제도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시스템의 한계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회사는 환경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다른 회사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 뿐이다.
시스템이 영속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시스템을 운용하는 리더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뛰어난 리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시스템에 의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그때 그때 유연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시스템보다는 리더에 의해 생존 문제가 결정된다. 문제는 리더의 기업에서의 생명주기는 20∼30년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 기업이 뛰어난 리더에 의해 한 세대간 잘 성장한다 하더라도 이 리더 이후 다음 세대에서도 성장할 것이란 걸 보장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피터 드러커는 “위대한 경영자의 마지막 과제는 승계”라며 승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기업이 작은 단위일 경우 기업의 영속성은 승계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대기업의 경우는 경영권이 승계되었다고 자동적으로 영속하는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 승계는 100년 기업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기업이 영속하는 비밀은 시스템도, 리더도 아닌 그 조직이 살아 있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한 기업을 이끈 리더가 다음 세대의 리더에게 넘겨주는 것도 바로 이 문화적 DNA가 담겨 있는 바통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에서 리더 교체가 일어날 때 비즈니스만 물려주지 이 바통을 떨어트리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공기업은 특히 심하다. 새로운 CEO가 등장하면 이 CEO는 전임 CEO가 공들여 만들어 놓은 문화적 DNA를 깡그리 부정하고 부수는 데 앞장선다. 공기업에서는 절대로 살아 있는 문화가 생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직에 문화가 죽어 있다는 것은 몸은 살아 있어도 몸을 움직이는 정신이나 영혼이 없는 것이어서 식물조직이라는 소리다.
중요한 것은 공기업에서처럼 죽어 있는 문화가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다. 죽어가는 문화라도 문화가 없는 조직은 없기 때문이다. 뛰어난 리더를 넘어서서 ‘살아 있는’ 문화만이 세월과의 싸움에서 살아남게 하는 원천이 된다. 결국 뛰어난 리더가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과는 자신의 재임기간 중 이처럼 살아 있는 문화를 만들어 자신의 후배들에게 성공적으로 전수했는지 여부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고 칭송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기업이 영속하기 위해서는 ‘우리 회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경영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회사의 사명에 대한 물음에 대해 확고한 소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영속하는 기업에서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물려주는 것은 이런 기업에 대한 살아 있는 문화의 유산인 사명인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 100년 넘어 영속하는 기업들이 많은 이유다. 우리 회사의 비전과 미션과 가치가 홈페이지에 멋지게 장식되어 있어도 이것들이 이 회사의 비즈니스를 하는 방식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런 회사의 문화는 서서히 고사되어 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이런 회사에서 경영자가 100년 기업으로 영속하겠다는 꿈을 꾼다면 이것은 일장춘몽일 뿐이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 교수
[경제시평-윤정구] 기업 영속의 비밀
입력 2014-06-11 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