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서환 (7) 준비된 마케팅·영어 실력으로 ‘하나로샴푸’ 대박

입력 2014-06-11 02:11
하나로샴푸 광고모델 채시라와 함께한 조서환 대표.

‘마케팅이 나의 미래’란 깨달음을 얻은 뒤 관련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낮에는 일을 해야 하니 야간경영대학원을 알아봤다. 하지만 비용이 문제였다. 월급 절반을 저축하고 절반은 자녀 양육비와 생활비로 썼는데 추가로 학비를 지출하려니 막막했다. 고민하던 어느 날 불현듯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지원 프로그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알아봤더니 놀랍게도 국가유공자 본인은 대학원 학비도 전액 지원해준다는 게 아닌가. 바로 성경 말씀이 생각났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 7:7)

마케팅 전공의 석사과정에 돌입하면서 주경야독이 시작됐다. 퇴근 후 동기들은 술집이나 노래방, 디스코장 등으로 갔지만 나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계속 공부에 매진했다. 하지만 그것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직장 상사가 ‘회사 일에는 신경쓰지 않고 퇴근시간 땡 하면 학교에 가느냐’며 퇴근시간쯤 30쪽가량의 영문 번역물을 준 것이다. 혼자 밤을 새워도 모자랄 분량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부탁해 내가 문서를 번역하면 이를 받아 적으라고 시켰다. 밤을 꼬박 새워 기어이 번역을 끝내자 나를 골탕 먹이려던 상사는 오히려 내게 감동을 받았다.

입사한 지 3년쯤 지났을까. 장영신 회장이 유니레버 조인벤처 기념식에서 통역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별도로 마련된 원고도 없었다. 통역은 입사 이후 계속해 온 일이긴 하지만 만일에 대비해 회장이 말할 만한 내용을 모두 글로 적었다. 그리고 이를 영어로 옮긴 뒤 전부 외웠다. 사실 한 문장씩 회장이 한 말을 옮기는 건 내겐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회장이 한꺼번에 연설을 다하고 요약하라 한다면 당황할 수 있으니 그때는 외운 것을 모조리 읊자고 생각했다.

두 번째 예상이 맞았다. 정말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15분 정도 회장이 연설을 하더니 청중에게 요약해 전해주라고 했다. 나는 즉시 외웠던 것들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혹시 실수할까 불안해하던 직원들은 내가 발표를 마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를 터뜨렸다. 그때부터 사내에서 ‘영어 조’란 별명이 붙었다. 이후 회사 사람들은 모르는 영어는 죄다 내게 물었다. 이들은 내가 밤새 연설문을 준비해 외운 것은 모르고 그냥 머리 좋은 천재라고 생각했다. 이때 나는 깨달았다. 진정한 용기는 필요한 실력을 갖출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라고.

사내의 인정을 받으면서 자신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자신감은 동기유발의 근원이자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실력을 겸비한 자신감만 있으면 세상에 안 될 것이 하나도 없다.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유일한 문제다.

이 경험은 나의 미래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영국 유니레버와 손잡은 회사는 마케팅과 영어 실력을 갖춘 인재를 요구했다. 이때부터 나는 회사에서 그야말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문무겸장으로 인정받았다. 마케팅 석사과정을 마치자마자 회사는 마케팅 실무자로 발령을 냈다.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맘껏 발휘할 기회가 온 것이다. 네덜란드인 부장, 프랑스인 상무 그리고 영국인 부사장을 상사로 모시고 ‘럭스’ ‘비놀리아’ ‘썬실크’ 브랜드 매니저를 맡았다. 나는 이때 ‘하나로샴푸’란 히트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외국인 상사들의 반대에도 뚝심으로 밀고 나가 성공을 일궜다. 럭스 같은 해외 상품이 아니라 순수 우리 제품과 브랜드로 좋은 성과를 거둬 더 감회가 새로웠다. 하나로샴푸 성공 후 나는 회사 이익 증대에 기여한 공로로 창립기념일에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인생에서 큰 믿음을 갖고 기도하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경험을 수없이 했다. 그래서 나는 위로가 필요할 때 다음 말씀을 큰 소리로 외우곤 한다. “너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