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른바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을 처음 제기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을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2급 국가 비밀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누설한 혐의(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가 적용됐다. 2012년 대선 전 유세에서 해당 내용을 낭독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 등 9명은 모두 무혐의 처분해 ‘면죄부’ 수사 논란이 제기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이현철)는 정 의원이 이명박 정부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재직할 당시 대화록을 열람한 뒤 2012년 10월 국회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를 누설한 혐의에 대해 벌금형 처분했다고 9일 밝혔다. 대선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관련 내용을 발설한 사실도 범죄 사실에 포함했다. 검찰은 약식기소 사유에 대해 “사안의 경중과 양형 고려사항을 따졌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그러나 2007년 11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공개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 의원실 비서관 정모씨를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정씨는 대화록보다 비밀 등급이 두 단계 낮은 대외비 문건을 유출했지만 징역 9개월의 실형이 확정돼 법정구속됐다. 사안의 중대성이나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면 검찰이 정 의원을 ‘봐주기’ 처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김 의원이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 14일 부산 서면 유세에서 대화록 내용을 언급한 일, 비슷한 시기 권영세 주중 대사가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기자 등에게 누설한 일에 대해서도 “직접 본 게 아니고 대화록 관련 업무처리 당사자도 아니다”며 ‘혐의 없음’ 처분했다.
특히 김 의원의 경우 서면 유세 발언이 대화록 내용과 700자 이상 일치하고 토씨까지 똑같아 대화록 원본을 직접 봤다는 의혹까지 받았다. 그는 지난해 11월 검찰 조사 당시 언론에 “찌라시에서 봤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그러나 김 의원과 권 대사가 대선 전 대화록 내용을 정 의원에게서 직접 보고받았다고 결론지었다. 이들은 당시 박근혜 후보 선거캠프 총괄위원장, 선거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이었던 만큼 새누리당이 국가 기밀을 선거에 이용한 사실이 수사로 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검찰은 불법 선거 의혹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검찰은 서상기·조원진·조명철·윤재옥 의원 등 새누리당 소속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들과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한기범 국정원 1차장이 지난해 6월 20일 대화록을 열람한 행위에 대해서도 “국회와 정부 사이 관행”이라며 면죄부를 줬다. 당시는 2급 비밀이 해제되기 전이어서 서 의원 등은 비밀누설 금지 서약까지 했지만 당일 기자회견을 갖고 관련 내용을 발설했다. 검찰은 “기자회견에서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특정되지 않았고, 단순한 소감을 밝힌 정도였다”고 해명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정회 부장검사)은 이날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여직원 김모씨를 감금한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법상 공동감금)로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이종걸·문병호·김현 의원 등 4명을 각각 벌금 200만∼5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새정치연합 박범계 당 법률위원장은 “국가기밀 누설 사건과 국정원 여직원의 셀프감금 사건을 같은 선상에서 취급하고 있다. 검찰이 형평성을 잃었다”며 “상설특검이 발효되면 특검으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檢, 김무성·권영세 ‘유출 무혐의’ 처분 논란
입력 2014-06-10 0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