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수준 ‘생각하는 인공지능’ 탄생

입력 2014-06-10 04:51
영국 레딩대는 8일(현지시간) 소프트웨어 '유진'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심사위원 중 33% 이상이 '유진은 진짜 인간'이라고 확신했다. 사진은 유진이 구동되는 슈퍼컴퓨터 유진 구스트만의 화면. 레딩대

'생각하는 인공지능'의 기준으로 통하는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첫 사례가 발표됐다. 인간과 운영체제(OS)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으로 최근 화제를 모은 영화 '그녀(Her)'에서와 같이 스스로 사고하고 성장하는 인공지능의 등장에 한걸음 더 다가간 의미 있는 성과로 해석된다.

영국 레딩대는 8일(현지시간) 영국왕립학회(로열소사이어티)에서 이 대학과 로봇기술 연구기관 로보로가 전날 공동 주최한 '튜링테스트 2014' 행사에 참가한 프로그램(소프트웨어) 가운데 하나인 '유진'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튜링테스트는 컴퓨터의 사고가 사람과 거의 흡사한 수준까지 이르렀는지 여부를 판별한다. 앨런 튜링은 1950년 발표한 튜링테스트에 관한 논문에서 '5분간의 텍스트(문자) 대화를 통해 컴퓨터를 진짜 인간으로 착각하는 평가자가 30%를 넘는 경우'를 검증 수준으로 제시했다. 행사를 주관한 케빈 워릭 레딩대 교수는 유진이 심사위원 중 33% 이상에게 '유진은 진짜 인간'이라는 확신을 줬다고 발표했다.

슈퍼컴퓨터 '유진 구스트만'에서 구동되는 유진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블라디미르 베셀로프, 유진 뎀첸코, 세르게이 올라센 등이 2001년 러시아에서 처음 개발한 뒤 최근까지 보완 작업을 거쳤다. 이 프로그램은 자신이 우크라이나에 사는 13세 소년 유진인 것처럼 대화를 나눈다. 개발자 베셀로프는 "13세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유진이 뭔가 모르는 게 있어도 충분히 납득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은 믿음을 주는 캐릭터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워릭 교수는 "일부는 전에도 튜링테스트 통과 사례가 있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결정적으로 대화 소재가 제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한 튜링테스트는 미리 질문이나 화제를 정해 놓지 않아야 한다"며 "우리는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최초의 사례가 유진이라고 자랑스럽게 선언한다"고 말했다.

유진이 최초로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라면 인공지능 연구가 상당 수준까지 진척됐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유진도 최초 버전 이후 13년간 보완을 거쳐 현재 수준에 이른 만큼 전문가들은 실용적인 인공지능 개발에는 앞으로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행사는 앨런 튜링의 별세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됐다. 영국의 천재 수학자 겸 전산학자인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암호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해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애플 로고 한입 베어 문 사과가 동성애에 대한 탄압으로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자살한 튜링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튜링테스트

앨런 튜링이 제시한 개념으로 '과연 기계가 생각할 줄 아는가'를 판별하기 위한 과학적·공학적 답변 기준이다. 컴퓨터 A와 사람 B가 서로 자신이 사람임을 주장할 때 심사위원단이 일정 비율 이상으로 컴퓨터 A가 진짜 사람이라고 착각한다면 그 컴퓨터는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판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