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그림 그리러 떠난 ‘영원한 현역’

입력 2014-06-10 02:31
김흥수 화백의 생전 모습. 구상과 추상이 어우러진 하모니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 화백이 43세 연하의 부인 고 장수현씨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림을 보고 있다. 김흥수미술관 제공
‘영원한 현역’ 김흥수 화백이 9일 새벽 서울 종로구 평창길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김 화백의 유족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달 전부터 건강이 악화돼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지만 편안하게 가셨다”고 전했다. 고인의 외손자인 영화 ‘풍산개’의 전재홍 감독은 “작년에 할아버지가 ‘지금에야 머리가 맑아졌고 미술에 대해 알 것 같은데 90대 노인이 돼버려서 생각대로 못하는 게 화가 난다’는 말씀을 했다”고 말했다.

1919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4년 일본 도쿄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살롱 회원으로 활동했다. 귀국 후 1965∼69년 성신여대 교수를 지내다 69∼8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미술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그런 가운데 오랜 실험을 거쳐 77년 구상과 추상을 한 화면에 담은 ‘하모니즘’을 선언해 국내 화단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바탕으로 90년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미술관, 93년 러시아 모스크바 푸슈킨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박물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어 국제적인 평가를 얻었다. 그 공로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10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다.

이름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게 된 것은 43세 연하인 제자와의 결혼 때문이었다. 덕성여대에 몸담고 있던 92년 제자 장수현씨와 결혼하면서 화제를 뿌렸다. 2002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척추수술을 받은 김 화백이 휠체어를 타고 다닐 때 부인이 항상 옆에서 보필하는 등 잉꼬부부로 유명했다. 부인 명의로 김흥수미술관을 건립하고 어린이영재미술교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인이 2012년 난소암으로 갑자기 숨지면서 김 화백은 기력이 약해져 시름시름 앓았다.

20여년간 남편에게 헌신하느라 개인전을 한 번도 열지 못한 부인이 안쓰러웠던 김 화백은 지난해 10월 ‘예술의 영원한 동반자-장수현·김흥수’ 전을 열어 부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쏟아내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찾아 한 점 한 점 감상하는 열정을 보였다.

말년에 그는 청력이 많이 떨어지고 관절에도 문제가 있어 제대로 작업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굴복하지 않고 재기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할 것이다. 영원한 현역으로 이젤 앞에서 생을 마칠 생각”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2년 전 부인을 잃고 슬픔을 견디지 못하던 그는 결국 ‘예술의 동반자’ 곁으로 영원히 떠났다.

유족으로는 본처와의 사이에 3남 1녀가 있다. 장씨와 사이에는 자녀가 없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3일 오전(02-2072-2011).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