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불법·탈법이 일상화된 사회

입력 2014-06-10 02:51

세월호 참사로 다들 생의 허무함에 빠져 있던 어느 심야 퇴근길에 제한속도를 정확하게 지키며 달려봤다. 서울 여의도에서 경기도 일산까지 가는 올림픽대로와 자유로의 제한속도는 각각 시속 80㎞와 90㎞다. 출퇴근시간을 제외하면 과속이 일상적인 도로이지만 집까지 가는 30여분간 수백대의 차들이 내 차를 사정없이 추월했다. 최고 제한속도까지 속력을 냈음에도 뒤차들은 수시로 상향등을 깜박이면서 나의 저속을 위협했다. 그날 내가 추월한 차는 한 대도 없었다.

언론매체들이 국민들의 안전 불감증을 연일 성토하고 있던 때였지만 모든 차들이 이를 무시하고 무섭게 내달렸다. 교통법규를 적용하면 모두 과속 딱지를 떼였어야 했다.

여전한 우리의 안전 불감증

그래도 모든 차들이 정확히 법규를 지킨 곳도 있었다. 집까지 가는 3군데의 과속단속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는 모든 차가 속도를 줄여 단속을 피해갔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밤이었다. 하지만 그날 심야 퇴근길에서 우리 사회의 무섭고, 어두운 단면을 발견하게 됐다.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는 불법·탈법도 마다하지 않는 사회. 법규를 지키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무법자들의 횡포. 그리고 여전한 안전 불감증. 지금도 도로를 달려보면 매 순간 우리는 이 같은 부조리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한국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우리나라의 자동차 1만대당 사고 건수는 101.2건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 중 유일하게 100건을 넘었다. OECD 회원국 평균(54.7건)의 약 2배다. 인구 10만명당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4.1명으로 역시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평균 1.4명보다 3배가량 많다. 교통사고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12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여름 밤 자기가 타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등불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우리도 안전은 도외시한 채 그저 달리는 데만 열중하고 있지 않는지.

그런 점에서 교통질서에 관한 한 우리는 일본을 욕할 수 없다. 고속도로에서도 정확하게 지켜지는 제한속도. 이면도로에서도 주차구역 안에 정확하게 주차된 차. 차량과 사람 모두 철저하게 준수하는 교통신호. 이 점에서는 대만도 우리보다 한수 위였다. 타이베이 시가의 허름한 주택가에 질서정연하게 주차된 승용차들에서 “아직도 우리는 멀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날 퇴근길 도로에서 느꼈던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어두운 단면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비교해볼 때 그 유사함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그동안 드러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보면 안전 수칙을 무시한 해운사의 과적과 무리한 운항, 그리고 해운사를 둘러싼 공직사회의 도덕적 해이를 든다. 국민들은 여전히 안전 불감증에다 도덕 불감증, 거기에 언제 사고가 일어났느냐는 듯 안전 망각까지 더해져 여전히 과속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부터 바뀌어야

세월호 사태 후속대책으로 정부는 국가 개조에 가까운 일대개혁을 단행한다고 한다. 대부분 제도 개혁에 맞춰질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는 제도 개혁의 최고 지향점은 기득권 포기여야 한다. 그동안 개혁의 이름으로 바뀐 수많은 제도의 수면 아래 교묘하게 숨겨진 기득권 보호의 철벽을 과감하게 걷어내야 한다.

하지만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결국 사람일진대 사람은 그대로인데 제도만 바뀐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인적 물갈이도 중요하지만 국민 스스로 DNA 개조에 준하는 일대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우선 고속도로 제한속도부터 제대로 지키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서완석 체육부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