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몸짓·장단… 외국인 관객 홀리다

입력 2014-06-10 03:22
서울 정동극장 전통공연예술 브랜드 '미소'의 두 번째 버전 '배비장전'에서 배비장을 유혹하는 기생 애랑의 캐릭터. 국악과 영상, 판소리와 무용이 어우러지는 무대로 외국인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정동극장 제공
여자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배비장이 애랑의 유혹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장면.
연간 620회 공연, 한 해 최다 12만명 관람, 유료 객석점유율 65%, 외국인 관광객 85%. 서울 중구 정동길 정동극장(극장장 정현욱)의 전통공연예술 브랜드 ‘미소(MISO)’가 거둔 눈부신 성과들이다. 전통공연의 명품화, 대중화, 세계화를 겨냥해 2008년 런칭한 ‘미소’의 첫 번째 버전은 판소리 ‘춘향전’을 무용극 형식으로 꾸민 ‘춘향연가’였다.

춘향이와 이도령의 애틋한 사랑을 국악뮤지컬 형식으로 담은 ‘춘향연가’는 지난해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주최 ‘찾아가는 공연 방방곡곡’ 사업 가운데 관객만족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미소’의 두 번째 버전 ‘배비장전’이 지난달 개막했다. 누적관객 100만 돌파(6월 중순 예정)를 앞두고 있는 ‘미소’의 흥행을 ‘배비장전’이 계속 이어갈지 관심이다.

지난 주말 정동극장 객석은 빈 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관람객의 대부분은 외국인이었다. 아쟁, 태평소, 피리 등 전통악기의 장단과 함께 막이 오르고 2층 한옥 누각에서 글을 읽고 있는 한 선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전소설 ‘배비장전’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주인공 이름은 ‘배걸덕쇠’. 학문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여자 뒤꽁무 니나 쫓아다니는 바람둥이다.

평소 양반의 체면을 지키려 애쓰던 배걸덕쇠는 문화예술을 담당하는 벼슬인 비장(裨將)의 신분으로 신임 사또와 함께 제주도로 향한다. 그곳에서 사또 환영식에는 참석도 하지 않고 여자들을 찾아 나선 배비장은 애랑이라는 기생을 만나 한눈에 반한다. 애랑은 배비장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사또와 짜고 그를 유혹한다.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해프닝에 관객들은 연신 박수치며 폭소를 터트렸다.

객석 양쪽에 설치된 자막판에는 한글과 영어, 중국어와 일본어 자막이 나와 외국인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장면이 바뀌는 대목과 판소리로 해설하는 부분 외에는 특별히 자막이 필요 없었다. 영상과 음악, 몸짓과 율동으로 전개되는 넌버벌(비언어)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다. 장면이 바뀌는 중간 중간에 풍물패들이 사물놀이와 상모돌리기, 접시돌리기 등을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출연진은 총 67명(무용 39명, 기악 17명, 풍물 11명)으로 지난해 말 오디션을 거쳐 5개월간 연습했다. 배비장은 이혁과 신성철, 애랑은 조하늘과 신미연, 사또는 전진홍과 이민우가 각각 더블 캐스팅됐다. 판소리 해설은 배비장의 부인을 연기하는 이은비와 김연진이 맡았다. ‘난타’ ‘하이킥’ 등을 연출한 윤정환 극단 산 대표가 대본을 쓰고 연출을 담당했다.

조선후기 화가 신윤복의 풍속화를 이용한 무대장치가 시대적인 배경을 잘 보여주었다. 배비장이 애랑의 집을 찾아가는 대목에서 움직이는 돌하르방과 담벼락이 길을 찾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면도 눈길을 끌었다. 김은희무용단의 안무와 김성국 중앙대 전통음악학부 교수의 음악도 잘 어우러졌다. ‘춘향연가’에 못지않은 재미를 선사했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지나치게 무용극에 치우치다보니 남녀 주인공의 역할이 강렬하게 다가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해외 뮤지컬에 길들여져 때론 감미롭고 때론 폭발적인 테마곡을 기대한 관객으로선 다소 밋밋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월요일은 제외하고 오후 4시·8시 연중 상설 공연. 관람료 4만∼6만원(02-751-150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