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절망 속 한줄기 ‘희망의 빛’ 만나다… 신작 ‘빛’ 시리즈 선보이는 화가 오치균

입력 2014-06-10 03:27
붓 대신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오치균 작가가 서울 강남 작업실에서 물감 묻은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해 공황장애와 하반신 마비를 겪는 등 어둠과 공포 속에서 발견한 한줄기 빛을 그린 '램프'.
미술시장이 뜨거웠던 2007년 가장 핫한 작가는 오치균(59)이었다. 1998년 작품 ‘사북의 겨울’이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6억181만원에 낙찰되는 등 웬만한 그림이 억대를 호가했다. 당시 가진 개인전에서 영화 ‘레옹’의 주인공처럼 동그란 선글라스를 쓰고 온몸에 문신을 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일체 사양하고 은둔생활을 했다. 잘 팔리는 ‘감’ 시리즈로 가끔 전시는 열었다.

미술계에서는 그런 그를 두고 “경매에만 출품하고 돈밖에 모른다”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분양 받아 강남 졸부가 됐다” “그림에 더 이상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등 온갖 억측과 소문이 난무했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11일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길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그를 지난 4일 강남 가로수길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3시간이 넘도록 인터뷰는 이어졌다.

먼저 돈 얘기부터 꺼냈다. “솔직히 돈 많이 벌기는 했죠. 어려웠던 시절에는 300만원짜리 그림 하나 팔아서 몇 달 지내고 그랬는데, 지금은 환경과 규모가 많이 달라졌어요. 하지만 수천억을 번들 그림이 안 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는 친구도 없고 술도 안마시고 골프도 안쳐요. 할줄 아는 게 그림 그리는 것밖에 없어요. 그래서 두문불출하고 죽어라 작업만 한 거죠.”

붓 대신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의 왼손과 가슴 등 온몸에는 문신이 가득하다. 근육질 몸매로 뭔가 있어 보이려는 과시욕의 일종인가. “목욕탕에 가면 사람들이 눈치를 보면서 슬슬 피해요. 옛날에 제가 몸도 허약하고 콤플렉스가 참 많았어요. 문신은 이를 감추기 위한 장치일 뿐이에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자신감의 표출이라고나 할까요. 문신을 새겨 넣으니 힘이 생기고 작업도 잘 돼요.”

대전의 감나무가 있는 농가에서 10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그는 서울대 미대와 미국 브루클린 미대를 졸업했다. 1980년대 유학 시절, 세탁소에서 다림질하며 생계를 잇기도 했다. 1991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귀국전시의 ‘홈리스’ ‘인체’ 시리즈로 주목받은 후 2000년대 중반부터 내놓은 ‘뉴욕’ ‘산타페’ ‘사북’ ‘감’ 등 시리즈로 ‘블루칩 작가’로 급부상했다. 그러다 이번에 ‘빛’ 시리즈를 들고 나왔다. 이전 작품도 어둠 속 빛이 간간이 있었지만 신작에서는 빛이 더욱 선명하고 환해졌다. “지난해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숨이 가빠오고 무릎 아래 감각이 없어졌어요. 지병인 공황장애 탓이죠. 걸을 수 없어 석 달가량을 작업실에 있었는데 창밖에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너무 반가운 거예요. 몸도 차츰 좋아지면서 ‘희망의 빛’을 그리자고 마음먹었죠.”

‘빛’ 신작을 통해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독일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촛불’을 보면 절대로 꺼지지 않을 것 같아요. 마치 영혼이 들어간 것 같죠. 한 줄기 바람에도 흔들리는 연약한 불꽃이지만 애절함과 절실함이 담겨 있는 빛을 그림에 끌어들였습니다. 저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 할 것 없이 작품을 보고 판단해 주시면 좋겠어요.” 선글라스 너머 그의 눈에 열정의 빛이 스며들었다. 전시는 25일까지(02-732-3558).

글·사진=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