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지역 ‘드럼통 폭탄’ 확산 조짐

입력 2014-06-09 02:55
많은 민간인 피해를 낳고 있는 ‘드럼통 폭탄’이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비교적 손쉽게 제작할 수 있어 수단과 시리아에서 미사일 대체 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한 드럼통 폭탄이 최근 이라크에까지 도입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드럼통 폭탄은 대형 드럼통에 폭약과 함께 못 등 금속 조각을 채워 헬리콥터나 항공기에서 떨어뜨려 폭발시키는 것으로 ‘플라잉 급조폭발물(flying IED)’로도 불린다. 항공기는 있지만 미사일 같은 폭격 수단을 갖지 못한 정부군이 반군 지역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사용한다.

문제는 건물을 날려 버릴 정도의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드럼통 폭탄이 불특정 다수를 표적으로 삼으면서 민간인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 극동정책연구소의 마이클 나이츠 분석가는 7일(현지시간) AP통신에 “반군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국가들이 시리아에서 벌어진 일들을 지켜보며 공군력만이 반군을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인식하면서 드럼통 폭탄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럼통 폭탄은 2011년 말부터 수단 정부군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반군 지역에 대한 무차별 투하로 민간인 피해가 커지자 수전 라이스 당시 미국 유엔대표부 대사는 ‘깊은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드럼통 폭탄이 맹위를 떨친 것은 시리아였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이끄는 시리아 정부군은 2012년 반군과의 최대 격전지였던 북부 도시 알레포를 중심으로 드럼통 폭탄을 대대적으로 사용했다. 정부군은 반군 소탕용이라고 주장했지만 피해는 노인과 어린이 등 민간인에게 더 많이 발생했다. 미 국무부는 최근 알레포와 함께 인근 3개 지역에서 드럼통 폭탄이 집중적으로 사용됐다는 증거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에는 이라크에서도 드럼통 폭탄이 사용됐다는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AP통신은 미국과 이라크의 관리들을 인용해 이라크 정부군이 수니파 지역인 안바르에 4∼10개의 드럼통 폭탄을 투하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라크군은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와 연계한 이슬람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장악한 지역에 드럼통 폭탄을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수개월 간에 걸친 반군 진압 작전에 성과를 내지 못한 이라크 정부는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에 무장 무인항공기(드론)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라크 정부는 드럼통 폭탄 사용 사실을 부인했지만 미 국무부는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 측에 원조 중단 등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은 이라크 정부에 민간인 보호와 국제법 준수를 촉구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최근 비슷한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라크 정부를 제어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에린 이버스 연구원은 “내가 만일 알말리키라면 바로 이웃국인 시리아의 알아사드가 같은 전술을 사용하고도 국제사회의 제재가 없었다는 것을 보면서 ‘나는 왜 안 되는가’라고 말하는 게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