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완성차업체 도요타는 2010년 1000만대 이상의 대규모 리콜 사태에 봉착했다. 사상 최대 리콜에 잘 나가던 도요타는 곧 무너질 것 같았다. 도요타 아키오 사장은 2010년 2월 열린 미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눈물로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최대 위기를 맞았던 도요타는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곧 대기업병에 걸렸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비대해진 생산시설, 느슨해진 기강, 불필요한 옵션이 붙은 자동차 등은 저비용 고효율로 상징되는 ‘도요타 생산방식’을 갉아먹었다. 도요타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를 해법을 제시했다. 연구개발(R&D)에 적극 투자하고, 쉼 없는 혁신에 박차를 가했다. 리콜은 물론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도요타는 빠른 속도로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1위의 판매량을 자랑하고 있다.
세계 경기회복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중국·유럽의 자동차 시장이 활황이다. 현대·기아자동차도 이 분위기를 타고 해외에서 판매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성장세가 시장 평균에 미치지 못해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신차 판매는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8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시장데이터센터’ 집계 결과 모두 160만8693대가 팔려 지난해 5월에 비해 11.4%나 증가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각각 7만907대와 6만87대를 팔아 사상 최대의 월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기아차의 월 판매가 6만대를 넘은 것은 미국 진출 20년 만에 처음이다. 기아차는 K5(현지명 옵티마)와 쏘울이 각각 월 기준 최고 판매실적(1만6843대와 1만5606대)을 냈다. 현대차의 경우 싼타페(1만638대), 에쿠스(324대), 제네시스(3437대), 투싼(4482대)이 두 자릿수 판매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렇지만 지난해 동월 대비 현대차 판매 성장률은 3.7%에 그쳤다. 기아차의 14.8% 성장을 합치면 평균 8.5% 성장률이다. 나름 선전했지만 시장 평균인 11.4%에는 미치지 못했다.
다른 자동차 업체들은 더 눈부신 실적을 올렸다. 지난달 미국 시장 판매 성장률은 닛산 18.8%, 도요타 17.0%, 크라이슬러 16.7%, 혼다 9.0%이었다. 사상 최대 규모 리콜 악재에 시달리는 GM도 지난해보다 12.6% 더 팔았다.
그 결과 현대·기아차의 시장 점유율은 오히려 뒷걸음쳤다. 5월 기준 점유율은 8.1%로 지난해 같은 달 8.3%에 비해 0.2% 포인트 줄었다. 올 들어 5월까지 점유율도 지난해의 8.1% 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이다. 특히 현대차는 지난해 5월 4.7%에서 올해 5월 4.4%로 점유율 하락세가 뚜렷하다. 반면 도요타는 지난해 5월 14.4%에서 15.1%로, 닛산의 점유율은 7.9%에서 8.4%로 증가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전자산업팀장은 “리콜과 대지진 등으로 최근 수년간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던 일본 업체가 완연한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그동안 반사이익을 누렸던 현대·기아차가 주춤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중국과 유럽에서도 양상은 비슷하다. 현대·기아차는 올 들어 4월까지 중국 시장에서 58만2890대를 판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1% 늘면서 시장 점유율 2위에 올랐다. 다만 성장률에선 보면 닛산(23.9%), 도요타(16.0%), 혼다(10.7%)에 미치지 못했다. 폭스바겐(23.4%), 푸조시트로엥(23.0%) 등 유럽 업체와 포드(45.4%)에도 뒤졌다. 유럽의 1∼4월 판매도 현대·기아차는 업계 평균 성장률인 7.1%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 기간 기아차는 지난해에 비해 6.6% 판매가 늘었지만 현대차는 1.6% 줄어 현대·기아차의 시장 점유율이 6.2%에서 5.9%로 하락했다.
현대·기아차는 신형 쏘나타와 카니발을 앞세워 판매를 늘린다는 전략이지만 올해 영업 조건이 좋지 않다. 가장 큰 변수는 환율이다. 현대차그룹 산하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국내 완성차 5개사 매출이 4200억원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최근 시작된 노사 임단협에 따른 비용 증가도 예상된다. 현대차 노조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것과 기본급 8.16%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경쟁업체들은 연비를 높이고 경량화한 차를 잇따라 내놓고 있는 반면 제네시스, 쏘나타 등 현대차의 신차는 무게가 더 늘었다”면서 “R&D 투자를 늘리지 않으면 내년 하반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美·日 자동차 내달리는데… 속도 못내는 현대·기아차
입력 2014-06-09 04:27 수정 2014-06-09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