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꽃 꽃잎 따서 손톱 곱게 물들이던/ 내 어릴 적 열두 살 그 꿈은 어디 갔나…내 나라 빼앗겨 이 내 몸도 빼앗겼네/ 타국만리 끌려가 밤낮 없이 짓밟혔네/ 오늘도 아리랑 눈물 쏟는 소녀 아리랑….”
‘소녀 아리랑’을 즐겨 부르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91) 할머니가 8일 오전 5시쯤 한 많은 세상을 뒤로 한 채 영원히 눈을 감았다.
배 할머니가 머무르던 경기도 광주시 소재 ‘나눔의 집’에는 이날 아침부터 많은 사람이 찾아와 생전의 배 할머니를 회상하며 고인의 영혼을 위로했다. ‘소녀 아리랑’을 구성지게 흥얼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배 할머니 영면 소식이 알려진 뒤 온라인상에서는 할머니의 안식을 기원하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일본을 규탄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쏟아졌다.
배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등록 위안부 피해자 237명 중 생존자는 54명(국내 49명, 해외 5명)으로 줄었다. 나눔의 집에는 현재 9명이 머물고 있다.
1923년 경북 성주 태생인 배 할머니는 19세 때 돈을 벌 수 있다는 꾐에 빠져 친구와 함께 정신대에 자원했다가 중국으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했다. 광복 후 잠시 고국에 머물다 일본으로 건너가 홀로 지냈다. 80년대 초 재차 귀국한 배 할머니는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모은 돈을 다 날리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97년 5월부터 지금까지 나눔의 집에서 지내왔다.
배 할머니는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뿐 아니라 음악과 미술 등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예술가’로 불렸다. 화장을 즐겨 해 나눔의 집 패션스타로 통했다.
3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배 할머니는 지난 1월 18일 나눔의 집을 찾은 정홍원 국무총리의 손을 붙잡고 ‘소녀 아리랑’을 구슬프게 부르기도 했다. 고인의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차병원 장례식장(031-780-6160)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10일 오전 나눔의 집 장(葬)으로 엄수된다.
광주=정수익 기자 sagu@kmib.co.kr
‘소녀 아리랑’을 즐겨 부르던 꽃이 졌습니다… 위안부 피해 91세 배춘희 할머니 하늘나라로
입력 2014-06-09 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