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서울대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모(35·여)씨는 2011년 큰아들을 출산한 뒤 2012년 2학기부터 1년간 서울 시내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틈틈이 박사 논문 준비도 해야 하는 ‘워킹맘’이자 ‘스터디맘’이다. 그러나 지난해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2학기부터 사실상 ‘휴직’ 상태다.
논문 준비 등 개인 공부를 위해 학교 도서관에 가려고 해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언덕이 많고 부지가 넓은 서울대 특성상 교내 통행조차 힘에 부쳤다. 공부하는 동안 아이를 잠시 맡길 공간도 없었다. 이씨는 8일 “아이와 함께 학교에 오는 건 굉장히 힘들다”며 “유모차를 끌고 학교에 오려고 해도 버스부터 문턱이 높다”고 말했다.
학업과 육아라는 ‘이중고’에 고민하던 이씨는 올해 초 서울대 부모협동조합 ‘맘인스누(Mom in SNU)’에 가입했다. 자녀를 키우는 서울대 대학원생들의 모임이다. 2012년 2월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 재학생이었던 서정원(32·여) 대표가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도 하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취지로 네이버에 카페를 개설해 만든 협동조합이다. 서 대표는 “직접 아이를 키우다 보니 직장이든 학교든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배제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것 같다”며 “특히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집단인 대학원에서조차 모성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카페는 비슷한 고민을 하던 ‘스터디맘’ 사이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개설 일주일 만에 30여명이 가입했으며 현재 147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적극적인 회원 50여명은 카카오톡에 단체 대화방을 개설해 실시간으로 육아·학업 정보를 공유한다. 매주 목요일 오후에는 교내 찻집인 ‘다향만담’에서 정기 모임을 갖고 ‘스터디맘’의 고충을 나눈다.
시작 당시에는 단순히 육아의 고통을 토로하는 ‘수다 모임’이었지만 점차 적극적으로 학교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서울대는 지난해 1학기부터 출산휴학 지침을 개정해 남녀학생 모두 임신·출산·육아와 관련해 최대 3년까지 휴학할 수 있게 했다. 올 3월부터는 영·유아를 데리고 도서관 출입도 가능해졌다. 열람실 출입은 불가능하지만 4층 로비까지 들어간 다음 대출실 직원을 통해 원하는 책을 빌릴 수 있다. 임신부 학생은 임시주차증을 발급받아 장애인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공부와 학업을 병행하는 ‘스터디맘’들이 모이다 보니 이들의 활동은 육아에만 그치지 않았다. 서로 관심 분야가 맞는 회원들끼리 모여 소규모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고 공동으로 한국연구재단에 연구지원 신청을 내기도 한다. 가정폭력 피해여성센터 등 관련 단체를 찾아가 강의하는 등 재능기부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아이가 커서 못 입게 된 옷과 장난감도 난민지원센터에 정기적으로 기부한다. 다른 대학에서도 ‘모성 보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해 연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학내에서도 이들의 목소리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 학부생의 절반 가까이가 여성이지만 대학원만 가도 그 비율이 턱없이 낮은 이유는 자명하다”며 “단순히 여성 교수 임용을 늘리는 차원이 아니라 여성이 학자로서 성장할 환경을 만들어 한창 공부할 나이에 육아로 학업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기획] 캠퍼스 ‘엄마 학생’ 뭉쳐 서울대를 바꿨다… 서울대 부모협동조합 ‘맘인스누’
입력 2014-06-09 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