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 연애 초기부터 시작… 피해 여성들 ‘내탓’하며 자포자기

입력 2014-06-09 02:33
대학생 A씨(여)는 1년 동안 악몽 같은 생활을 했다. 행복할 줄만 알았던 남자친구와의 연애는 매일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남자친구는 사귄 지 1개월이 되던 때부터 A씨를 때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A씨를 40일 동안 감금하고 폭행했다. 그때마다 남자친구는 “사랑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A씨는 친구들에게 “진짜 헤어질 거야. 진짜 헤어진다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A씨는 번번이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데 실패했다. 울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남자친구를 보며 ‘진짜 뉘우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이화영 소장은 최근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여성의 관계 중단 과정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소장은 2012년 7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데이트 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 5명을 심층 면접했다. 논문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을 겪은 여성들은 대부분 연애 초반부터 폭력을 경험하지만 이를 사랑으로 착각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데이트 폭력은 비교적 연애 초반에 문제가 나타나지만, 면접에 참여한 여성들은 길게는 13년까지 고통스러운 관계를 유지했다.

데이트 폭력은 폭행, 폭언·협박, 납치·감금, 강간, 스토킹 등의 유형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남성은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했다. 여성이 이별을 선언하면 무릎을 꿇거나 울고, 잘못을 빌며 용서를 구했다. 피해자들은 자신을 괴롭히던 남성의 사과를 볼 때마다 이를 ‘진심 어린 반성’으로 인식하고 용서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설문에 참여한 B씨는 “헤어지자고 할 때마다 계속 찾아오고, 전화를 하며 내게 최선을 다하며 노력하는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다”고 말했다. 이별을 통보하면 “죽어버리겠다”는 등의 협박이 돌아오는 것도 쉽게 관계를 끊지 못하는 이유로 꼽혔다. 이별 과정에서 좌절을 겪은 피해자들은 결국 모든 문제를 자기 탓으로 돌리며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소장은 ‘데이트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라고 조언했다. 상대의 반응에 동요하지 말고 단호한 태도를 유지해야 상대도 폭력을 비롯한 어떤 방법으로도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면접 참여자들은 가족과 친구 등에게 도움을 받거나 상담소 등에 손을 내미는 것도 효과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별 이후도 중요하다. ‘데이트 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나타나는 폭력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도 후유증이 크다. A씨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또 그런 사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의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8일 “관계를 끝낸 이후에도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이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