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생인 아들은 어느 날 아버지에게 말했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축구선수였던 아버지는 두 번이나 아들에게 물었다.
“축구선수가 되는 게 엄청 힘든데 그래도 하고 싶니?”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개인코치가 됐다. 지옥훈련이 시작됐다. 아들은 힘들다는 내색도 하지 않고 힘든 훈련을 견뎌냈다. 그리고 마침내 태극마크를 달고 2014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한다. ‘홍명보호’의 왼쪽 윙어 손흥민(22)은 자신의 첫 월드컵 무대에서 기량을 맘껏 뽐내 세계적인 스타로 도약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아버지가 다져 준 기본기=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48·아시아 축구 아카데미 총감독)씨는 1985년부터 1990년까지 K리그에서 현대, 일화를 거치며 선수 생활을 했다. 손씨는 “순발력은 좋은 편이었지만 기본기가 부족해 좋은 선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기본기를 강조한다”고 털어놓았다.
아들에게서 스피드와 순발력 등 축구선수에게 필요한 자질을 확인한 손씨는 기본기 중심의 훈련을 시켰다. 손씨는 장갑을 끼고 아들에게 공을 던져주며 헤딩연습을 시켰다. 장갑이 헤질 정도로 훈련의 강도를 높였다. 어린 손흥민은 힘들다는 불평도 않고 아버지의 훈련을 잘 따랐다.
손씨는 아들의 훈련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눈이 다 내린 뒤 눈을 치우면 땅이 질척해지고 추워지면 얼어붙기 때문에 손씨는 눈이 그치기 전에 눈을 치웠다.
2008년 동북고에 입학한 손흥민은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 해외 유학 프로젝트에 선발돼 독일 함부르크 유소년팀에서 선진 축구를 익혔다. 함부르크 유소년팀 입단을 계기로 그는 함부르크에서 프로에 데뷔했다.
손씨는 1년 중 3분의 2 가량을 아들이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독일에 머문다. 아들과 함께 훈련하며 컨디션을 체크한다. 시즌이 끝나면 손씨는 아들과 함께 춘천 공지천운동장에서 하루에 4시간씩이나 훈련을 한다. 단 하루도 쉬지 않는 강행군이다.
◇브라질발 ‘손세이셔널’ 기대=한국 대표팀의 비밀병기인 ‘손세이셔널’ 손흥민은 지난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2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정규리그에서 10골 4도움을 올렸고, 독일축구협회(DFB) 포칼컵에서 2골 1도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2도움을 남겨 각종 대회를 통틀어 12골 7도움으로 시즌을 마쳤다.
레버쿠젠에서 왼쪽 윙어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은 전광석화 같은 돌파와 과감한 드리블 그리고 반 박자 빠른 슈팅을 자랑한다. 홍명보 감독은 당초 손흥민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했지만 정작 대표팀에선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홍 감독은 지난해 8월 독일에서 손흥민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눴고, 실력으로 자신을 입증하라는 당부를 했다. 마침내 손흥민은 지난해 9월 아이티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홍 감독의 첫 부름을 받았다. 이어 홍명보호에 처음으로 올라 치른 아이티와의 평가전에서 혼자 2골을 터뜨려 홍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손흥민은 지난해 10월 말리와의 평가전에서도 골을 넣어 대표팀의 핵심 공격자원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손흥민은 A매치 6골을 기록 중인데, 그 중 5골을 지난해 3월 이후 터뜨렸다. 기량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는 증거다.
손흥민은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잠겨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축구화 끈을 동여매고 있다. 손흥민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모든 피해자들과 가족들께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라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밖에 없다는 것이 제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고 비통한 심정을 전한 바 있다. 손흥민은 2013∼2014 분데스리가 뉘른베르크와 31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검은 완장을 차고 출전해 현지 언론과 팬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마이애미=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축구선수였던 아버지 졸라서 입문… 브라질發 ‘손세이셔널’ 기대하세요
입력 2014-06-09 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