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위기는 나선형으로 온다

입력 2014-06-09 04:27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은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서양 속담과 상통한다.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하나둘씩 쌓여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는 뜻이 아닌가. 고뿔도 자칫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고, 큰 제방도 작은 틈새로 무너질 수 있다.

하물며 한 사회를 풍미하는 가치관의 영향력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모두가 공감하는 가치관은 사회의 통념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그 위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 가치관에 문제가 생겼다면 어찌 할 것인가. 이 경우 대개는 가치관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 때문에 빚어진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가치관도 수정과 보수가 필요하다. 한데 바뀌어야 할 낡은 가치관이 여전히 위력을 갖는다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더 비극적인 것은 현재의 사회통념이 이미 낡았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전혀 귀 기울이려고 하지 않을 때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바로 그런 경우다.

전쟁의 폐허에서 빠르게 고도성장을 이뤘고,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는데도 가장 빨리 회복했던 일본 경제. 85년 플라자합의로 엔고 압력이 강화되는 상황 속에서 오뚝이처럼 튀어 오르던 일본 기업들. 이러한 성과 위에서 그들은 ‘일본형 경영’이란 말에 취해갔다.

“일본 기업은 경영진과 노조가 대립하지 않아 노사분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영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고성장이 실현될 수 있다. 경영자들은 주가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기에 장기적 경영이 가능하다. 주가 변동에만 매달린 미국 기업들이 단기적 업적만을 추구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80년대 일본 경영·경제학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믿었고 외국학자들도 공감했다. 그러나 노구치 유키오 교수는 ‘전후일본경제사’(2008)에서 그건 착각이자 비극의 시작이었다고 갈파한다. 영광이 영원하리라고 본 사람들은 땅·주식 투자에 올인해 거품경제를 낳았고 정부는 이를 방치했다는 것이다.

90년 거품이 터지자 백약이 무효였다. 기준금리를 0%대로 낮추고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일본경제는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일본은 ‘경기침체→소비·투자위축→디플레→경기침체’라는 이른바 ‘디플레 스파이럴’이란 악순환에 빠졌다.

디플레 스파이럴은 경제가 역(逆) 나선형으로 서서히 사그라져가는 모습에 빗댄 것이다. 점진적으로 나아가도 시원찮을 판에 조금씩 나선형으로 주저앉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인들은 극단적인 폐색감(閉塞感)에 시달렸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잃어갔다.

위기는 그렇게 역 나선형으로 밀려왔다. 일본 정부는 90년대 중반부터 개혁을 말했지만 진척은 없었다. 노구치는 안팎에서 칭송되던 일본형 경영으로부터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탈피 없이는 반전이 어려울 것으로 본다. 최근의 아베노믹스가 안팎의 관심을 끌고 있으나 성공 여부는 확실치 않다.

한국의 경우도 위기는 나선형으로 접근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빠른 회복을 보이면서 2010년 6%대 성장률을 보인 한국경제가 이후 성장률이 급락하면서 일본형 장기불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었다. 그렇지만 그때 나는, 한국 특유의 역동성을 염두에 두고 적어도 일본형 역 스파이럴에는 빠지지 않을 것으로 봤다.

돌이켜보면 그건 안이한 판단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저축은행 사태를 필두로 하는 금융불안, 세월호 침몰사고를 정점으로 하는 안전불감증, 민관 유착구조의 병폐, 소비심리의 위축, 비전 상실 등으로 역 나선형의 흐름이 이미 전개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개발연대의 자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성장동력은 언제든 다시 채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이 와중에 슬로건에만 머문 국민행복시대, 말뿐인 개혁 등은 그야말로 국민을 좌절시키고 더 큰 무력감에 빠뜨릴 뿐이다.

우선은 정책의 초점을 역 나선형의 흐름을 막는 데 둬야겠다. 다만 기존 통념과의 결별은 국민 모두의 몫이라야 한다. 누구랄 것 없이 젖은 옷은 벗어야 하지 않겠나. 위기는 꿈틀꿈틀 밀려오고 있다.

조용래 편집인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