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현충일 사이렌이 울린다. 순국선열께 묵념하는 잠시의 시간. 그 전 6월 3일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49재였다고 한다. 6·4선거 유세 당시 후보들도 당을 막론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는 소식이다.
청소년기에 국어교과서에서 배운 청춘예찬이 저절로 떠올라 큰 소리로 낭송하게 되던 6월. 무성한 수목이 연두색에서 초록색을 향해 몇 발짝씩 나가고 그에 따라 강물이 깊고 푸르게 짙어지는, 때로 이른 장마가 오기도 하는, 내리치는 빗발에 더욱 싱싱해진 산천초목이 우주간의 박동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희망 찬 신록의 6월임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올해는 묵념 끝에 상념이 들어선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이런가. 6월의 역사가 왜 이리 파란만장한지 문득 이상하다. 며칠 전 세월호 희생자들의 49재도 있었지만 6월 6일 현충일, 오래전의 6·10만세운동, 그 후 1987년 6·10민주항쟁, 그다음 민족상잔의 6·25 상흔을 빼고 어찌 6월을 말할 수 있으랴. 수많은 죽음과 희생과 상처가 어쩌자고 생명을 상징하는 신록의 계절에 집약하여 들어 있는지 모를 일이다. 삶과 죽음은 한속이며 죽음은 탄생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인가. 6월이란 달이 기묘하기만 하다.
얼마 전 진도에 살던 동료가 세상을 떠났다. 외딴집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 발견이 늦었다. 사위와 함께하는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차여서 그의 타계를 안타까이 여긴 방송국은 생전의 녹화를 2회로 나누어 추모 방송으로 하겠다는 고마운 결정을 내렸다. 1회 분량이 방영되어 “자신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평소 모습에, 결론을 알고 보는 시청자의 마음이 짠했다”는 기사를 대하니 요즘 유행어 중 하나인 유체이탈 화법이란 말이 생각난다. 언행불일치의 화법을 풍자하는 말인데 당사자인 자기와 상관없는 듯 남의 경우만 예로 드는 말본새도 유체이탈 화법에 속할 게다. 죽음 앞에 결론 나 있는 생명들의 숙명을 시청자는 그 순간 잊고 있기에 든 생각이다. 하긴 매일의 삶에서 매일의 죽음을 생각하는 자가 몇이나 되리. 삶만 살기에도 벅찬 터이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로 시작하는 가곡 ‘이별의 노래’ 뒤 소절이 자주 귓가를 스친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하는. 그렇다. 100% 확률로 너도 가고 나도 간다. 정확한 날짜를 모를 뿐, 우리 모두 자신의 예고된 부음과 함께 길 위에 있는 애잔한 존재인 것을.
우선덕(소설가)
[살며 사랑하며-우선덕] 예정된 시간
입력 2014-06-09 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