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佛·벨기에 방문] 美 “우크라 개입정책 한달 내 포기하라”… 러에 최후통첩

입력 2014-06-07 06:14 수정 2014-06-07 06:30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에 한 달 시한을 주고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왼쪽부터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오바마 대통령, 헤르만 반롬푀이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오른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논의했다(위 사진).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같은 날 파리 엘리제궁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이타르타스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1개월’이라는 시간을 제시하며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경우 보다 강력한 제재 조치를 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미국 의도와 달리 주요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와 개별 정상회담을 가졌다. 러시아도 지난 2월 소환했던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를 돌려보내기로 하는 등 대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한 달 안에 해결해라”=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벨기에와 프랑스를 방문 중인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에 한 달 안에 우크라이나 개입 정책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는 러시아가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제재 조치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NYT는 오바마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한 이후 구체적인 시간 프레임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다음 단계의 제재는 제한적이었던 그동안 제재와는 차원이 다른 금융이나 에너지 등 광범위한 분야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미국의 구상과 달리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 핵심 우방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국 주도의 대(對)러시아 고립작전은 외형상 어그러진 셈이다.

특히 프랑스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6억 달러 규모의 최첨단 ‘미스트랄’ 상륙함 2척을 러시아에 판매키로 했다. 프랑스 관리는 NYT에 “프랑스는 러시아 고립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떻게 러시아를 무시할 수 있나. 그들은 중동의 주요한 세력이며 어디에나 있다”고 말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만나 어떻게 우크라이나에서 휴전을 할 것인지 논의했다고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이 밝혔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개입하지 말고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 당선자를 인정하고 함께 일하라”고 요구했다. 서방과 러시아의 냉랭한 관계를 반영하듯 두 정상은 악수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러시아 측은 악수를 했다고 확인했다. 푸틴 대통령은 6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한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외무부는 미하일 주라보프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가 7일 키예프에서 열리는 포로셴코 대통령 당선자 취임식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야권이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하자 항의 표시로 자국 대사를 소환했다.

◇160억 달러짜리 저녁식사?=프랑스는 우크라이나 사태 문제보다도 자국 최대 은행에 부과될지 모르는 벌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측에 총력전을 펼쳤다. 올랑드 대통령은 파리 샹젤리제 인근 한 식당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2시간가량 저녁식사를 했다. AFP통신은 이 저녁을 100억 달러(약 10조2200억원)짜리로 묘사했다.

현재 미국 법무부는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가 2002∼2009년 수단과 이란, 시리아에 부과된 제재 조치를 어기고 거래를 한 혐의를 잡고 100억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매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은 벌금이 단일 은행 사상 최고액인 160억 달러(16조35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역대 최고 벌금액은 JP모건체이스가 모기지담보부증권(MBS) 부실 판매와 관련, 지난해 받은 130억 달러다. 올랑드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천문학적인 벌금 부과 가능성을 우려하는 서한을 보낸 데 이어 저녁자리에서도 상당 시간을 할애해 미국의 합리적 접근을 요청했다.

일단 오바마 대통령은 냉랭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앞서 벨기에 브뤼셀에서 “은행 관련 문제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며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지만 미국의 전통은 대통령이 기소에 개입하지 않으며 법은 정치에 의해 영향 받지 않는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프랑스도 거액의 벌금을 맞을 경우 미국과 유럽연합(EU) 사이에 진행 중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어 양국이 어느 정도 타협안을 마련했을 개연성도 있다.

이제훈 기자,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