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차기 국무총리 인선 장고(長考)가 계속되고 있다.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의 사퇴 이후 벌써 10일째 이어진 박 대통령의 고민은 강도 높은 ‘국가 대개조’를 진두지휘할 적임자를 찾는 것이다.
안 전 후보자 중도하차 이후 6·4지방선거 직전까지는 중량급 정치인 총리 기용론이 대세였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선방하는 ‘호재’가 나오자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능력 있는 정치인’에서 청렴하고 깨끗한 명망가 쪽으로 변화하는 기류가 포착된다. 박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서 ‘정부 불신’ 민심뿐 아니라 본인에 대한 탄탄한 지지세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자신감도 갖게 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총리 인선 기준은 명확하다. 지난 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밝힌 대로 “국가 개혁의 적임자로, 국민이 요구하는 인사”다. 세월호 참사 이후 민관유착 등 각종 사회적 적폐와 부조리, 무사안일주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상 이런 관행을 뿌리 뽑는 데 앞장설 개혁 성향의 인물이라는 의미다. 당초 ‘안대희 카드’를 선택한 것도 안 전 후보자가 국가 개혁 적임자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전관예우 등 ‘법피아(법조인+마피아)’ 논란 속에 하차하면서 박 대통령의 구상은 깨져버렸다.
국개 대개조 못지않게 국민 눈높이까지 총리 자격에 더해지면서 상황은 오히려 복잡해졌다. 문제는 개혁을 일관되게 이끌 리더십과 소양, 업무능력은 물론 사회통합과 화합을 조율하면서 청렴성, 도덕성까지 모두 갖춘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여당 내 거물급 정치인보다는 명망 있는 ‘사회통합형’ 인사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 출신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딸깍발이’ 판사로 널리 알려진 조무제 전 대법관이 자주 거론되는 이유다. 특히 이들은 공직에서 물러난 뒤 변호사 활동 대신 대학에서 후학 양성에 힘써온 공통점이 있다. 물론 또 다시 법조인 출신이라는 부담은 있지만 ‘법피아’ 논란에서 자유로운 데다 청렴 이미지도 갖췄다.
여권에서는 “그래도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 총리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온다. 국정 운영과 민심의 향방을 제때에 파악하고, 대통령에게 직언도 불사하는 ‘책임총리’ 역할을 하려면 선이 굵고 추진력이 강한 정치인이 훨씬 낫다는 논리다. 잠재적 대권주자로 꼽히는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속적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남경필 당선자에게 조만간 인수인계를 마무리하면 도정(道政) 중단 부담도 없다. 다만 김 지사가 친박(친박근혜) 인사가 아니고, 박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원거리를 취해왔다는 한계가 있다. 한때 유력하게 떠올랐던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본인이 이미 당권 도전을 공식화해 후보군에서 멀어졌다.
정치인이나 법조인이 국민들에게 기득권 세력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된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때문에 학계의 원로급 인사나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오래 해온 명망가의 전격 발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능력과 청렴성, 개혁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인물들에 한해서다.
청와대는 이르면 다음주 초 총리 후보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철저한 검증이 중요한 만큼 더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후보군을) 좁혀서 검증 작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냐 청렴한 법조·사회적 명망가냐
입력 2014-06-07 06:13 수정 2014-06-07 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