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미국인 관광객 또 억류… 대화재개 위한 협상 카드?

입력 2014-06-07 06:12 수정 2014-06-07 06:30
북한 당국이 지난달 중순 북한을 방문한 미국인 남성을 또 억류했다. 이로써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은 3명이 됐다. 북한이 미국 당국과 대화 재개를 위한 협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자꾸 미국인을 억류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북한은 그동안 한반도 이슈가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뒷전으로 밀리자 조바심을 내왔다.

조선중앙통신은 6일 "지난 4월 29일 관광객으로 입국한 미국인 제프레이 에드워드 포울레가 관광의 목적에 맞지 않게 공화국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기관에서 그를 억류하고 조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앙통신은 구체적 위반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일본 교도통신은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그가 호텔에 성경책을 남겨둔 채 출국하려 했다는 점을 억류 이유로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또 그는 관광을 마친 뒤 지난달 중순 출국 직전에 억류됐다고 전했다. 미 국무부는 이 남성의 억류 사실을 접한 뒤 평양의 스웨덴 대사관을 통해 사태를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는 지난달 21일에도 북한이 미국 시민을 멋대로 구금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북한 여행을 자제하라고 지난해 11월에 이어 두 번째로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국무부가 이 남성의 억류 사실을 접한 뒤 여행 자제 발표를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4월에도 관광비자로 입국한 매튜 토드 밀러라는 미국인이 공항에서 북한 정부가 발급한 관광증을 찢고 소리치는 등 몰지각한 행동을 했다며 구금했다. 2012년에는 선교사인 케네스 배씨가 북한 내에서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했다며 구속한 뒤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해 1년 반 이상 억류 중이다.

북한의 잇따른 미국인 억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보내는 일종의 '시그널'이라는 해석이 많다. 별 것 아닌 위반사항인데도 '외화벌이'에 도움이 되는 관광객을 구금하는 무리수를 두는 것이나, 20여일이나 지난 일을 굳이 국가 기간통신인 중앙통신을 통해 대외적으로 발표한 게 다 미국의 관심 끌기 차원이라는 것이다.

억류자가 늘수록 미국의 '북한 무시'도 지속되기 쉽지 않다. 최근 탈레반에 포로로 잡혀 있던 보 버그달 육군병장을 "우린 그를 잊지 않고 있었다"면서 탈레반 지도자 5명과 맞교환해 데려오기도 했다.

특히 억류자가 늘어 여론이 시끄러워질수록 미국인들을 데려오기 위해 대북 특사를 보내거나 북·미 당국자 간 접촉에 나설 수 있다. 더구나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11월 미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과거 미국인 여기자 2명을 석방할 때(2009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아이잘론 말리 곰즈씨 석방 때(2010년)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바 있어 비슷한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잇단 억류 행태가 지나치면 오히려 미국 내 대북한 여론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고, 북한의 고립도 가중될 수 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