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참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새삼 느낀 것은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도중이었다. 순천 시내 곳곳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붙잡기 위한 경찰의 검문검색이 강화됐다. 유 전 회장이 순천 서면의 한 휴게소와 ‘숲속의 추억’ 별장 등에 은신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10일째 이 지역 일대가 뒤숭숭한 분위기다.
순천 신도심과 옛 도심을 잇는 봉화터널에 들어섰다. 터널 안 매캐한 공기가 코끝에 묻어왔다. 택시 운전석과 조수석 창문은 열려있었다. 뒷자리에 앉은 나는 창문을 올려달라고 부탁할까 했지만 택시기사를 귀찮게 하는 것 같아 그냥 손으로 코를 막았다. 입은 굳게 다물고 호흡을 참았다. 불과 40초밖에 걸리지 않는 1㎞ 구간의 짧은 터널이었다. 잠깐이었지만 터널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숨을 참기 어려웠다. 문득 세월호 참사가 떠올랐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1분도 참기 힘든 고통인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씩씩하고 밝은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한 가정의 기쁨이었다. 설렘을 안고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수학여행에 나섰던 아이들은 부모 곁을 떠났다. 구명조끼를 입고 기울어져가는 선실 안에서 얌전히 구조를 기다리던 착한 아이들은 숨을 쉬지 못하고 서서히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이들은 죽음을 앞두고 엄마와 아빠를 생각했다.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냈다.
택시는 터널을 빠져나왔지만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대한민국의 어른 가운데 나 역시도 한 사람의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터널 안 공기가 몸에 좋지 않다고 숨을 참는 내 모습이 오히려 죄스럽고 창피했다.
지난달 6일 부모님을 모시고 전남 신안군 임자도 해변으로 가족여행을 가려다 포기했다. 손자들과의 여행을 기다리던 아버지가 반대하셨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을 듣고서는 도저히 내 가족들만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고 싶은 최소한의 도리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 당시 연휴 동안 전국의 고속도로와 주요 국도는 꽉 막혔다. 서울에서 목포까지는 무려 8시간이나 걸렸다. 전 국민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고 온 나라가 비통해한 지 20여일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지난 4월 16일 오전 9시15분쯤 학생들을 가득 태운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다.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이게 무슨 일이야. 제발 모두가 무사하길.” 마음속으로 외치며 급히 차를 몰았다. 순천 도심을 빠져나가는 교차로에서 과속 단속에 걸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고 현장에 빨리 달려가 소식을 전하는 것이 몸에 밴 일이지만 더욱 마음이 급한 것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현장을 찾았다. 누군가가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그 자체도 슬픈 일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가슴에서 평생 들어내지 못하는 무거운 상처와 그리움을 남기게 된다.
현장에 가는 동안 ‘460여명 승선객 가운데 사망 1명’이라는 소식이 차 안 라디오에서 나왔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을 넘게 달려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는 사망자가 둘뿐이었다. 하지만 어선을 타고 사고 현장 근처에 다녀온 어민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항구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오후 2시가 지나면서 실종자가 300여명에 이른다는 소식에 팽목항은 그대로 주저앉은 듯했다.
이후 실종자 가족들 1000여명이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 마련된 임시 거처에 내려와 눈물바다를 이뤘다. 40여일 그곳에 있었다. 며칠 동안 밥 한 숟가락 먹지 못하고 침과 눈물만을 삼키며 오열하는 실종자 가족들을 봤다. 일어날 힘도 없어 보였다. 물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의 사진만 바라보는 어머니도 있었다. 그런 가족들을 보며 나 역시 끼니를 제대로 챙길 수 없었다. 먹을 의욕도 잃어버린 그들을 바라보며 혼자 배를 채운다는 것이 미안했다. 늦은 밤 숙소에 들어오면 혼자 가끔씩 울었다.
정부는 사고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청을 전격 해체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일이 지나도록 세부적인 정부조직 개편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실종자 수색에 나서고 있는 해경은 의욕 상실감에 빠져있다. 실종자 가족들만 애를 태우는 상황이다. 실종자 수색이 더딘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내일이 없어진 이들에게 수색만 열심히 하라고 독려한들 누가 진정으로 하겠는가.
세월호 사고 52일째인 6일 팽목항의 여름 햇살은 따가웠다. 살랑이는 바닷바람과 긴 파도소리만이 마지막 남은 실종자 열네 가족과 함께하고 있다. 온 국민이 실종자 가족의 슬픔을 같이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잊혀져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의 비통함을 희생자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만의 몫으로 남겨둔 채 말이다.
팽목항=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
[창-김영균] 세월호 아픔 벌써 잊어가나
입력 2014-06-07 06:12 수정 2014-06-07 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