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화 칼럼] 상생의 문화를 만들라

입력 2014-06-07 06:08 수정 2014-06-07 06:30

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는 본래 승자독식이라서 패자는 부여받은 권력의 자리에 집행자로서 참여할 수 없다.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한다. 하지만 유권자의 위치는 다르다. 투표한 자가 당선됐든 패배했든 상관없이 유권자는 당선자가 섬기고 동행 받을 주권자들이다. 격려하며 또는 비판하며 동행도 할 것이다. 상생해야 할 공동운명체다. 따라서 측근 운동원이나 우호적인 인사들과만 소통하고 이권을 나누면 반드시 공동체 결속에 금이 가고, 악화되면 균열을 빚는다.

누구에게나 개방하고 소통하라. 선거 때 표심을 공략하던 그 초심을 잃지 말고 쓴소리와 단소리를 정성스럽게 함께 들어라. 아부성 단소리가 판치지 않게 하고, 텁텁한 쓴소리를 민심의 소리로 승화시켜 들어라. 그리고 종합적인 판단은 합리적으로 하라. 무언가 밝힐 때에는 밀실에서 귓속말로 하지 말고 얼굴을 보며 공개석상에서 하라. 임기수행 성공 여부는 바로 개인적인 이권을 원치도 요구하지도 않는 자들의 쓴소리를 경청하는 데 있음을 알라. 이들을 적대시하지 말라. 그러면 불통의 늪에 빠진다. 이들을 오히려 소통으로 얻은 게 되는 행운의 잠재적 지지자들이라 믿고 의지하면 좋을 것이다.

이제 세월호는 우리 미래를 새롭게 설계할 때 필요한 정치적 어젠다다. 여야가 함께 손을 맞잡아야 한다. 피해자와 유가족을 ‘우리 자신들’의 분신으로 삼고 위로와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항상 ‘기억’해야 할 사건이고 사람들이다. 둘째는 ‘실체규명’에 성실을 다해야 한다. 책임자들을 보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발을 방지할 미래의 ‘대안과 비전’을 위해서다.

정부 기구 개조만이 아니라 공직자의 공적 의식 개조도 포함해야 한다. 공무원은 우물 안 개구리식의 전관예우나 ‘관피아’ 같은 폐쇄회로식 일방통행을 버리고, 업무를 위임한 국민과 소통하고 나누어야 한다. 국민은 관료주의에 의거한 틀에 박힌 안보 보고에 이물이 나 있다. 국가를 지키는 군사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상의 민생안보를 구별하려는 듯한 낡은 이념 도식에도 진저리가 난다. 국민의 한분 한분 생명이 존중받고 보호받는 인간안보의 가치관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음을 보고 싶다.

사회적 약자와 경제적 빈자가 실제 삶 속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괴물에 치여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적 보호에서 밀려나는 현실이 너무도 애처롭다. ‘양의 가죽을 쓴 이리’와 무엇이 다르며, 또 ‘회칠한 무덤’과는 어떻게 다른가. 생각이 좀 다르다고 해서 진보적인 상대를 ‘종북주의자’로, 또는 정반대로 보수적인 상대를 ‘보수꼴통’으로 폄하하고 매도하는 세상이 ‘선진사회’를 운운할 자격이나 있는 건가.

선거를 통해 얻은 ‘권력’은 독점적 소유권이 아니다. 그것은 주권재민 원칙에서 유권자가 부여한 책임적 관리권이다. 당선자는 그것의 소유주가 아니라 관리자다. 그것은 권한인 동시에 책임이다. 위에서 군림하는 권세가 아니라 아래에서 봉사하는 청지기 사명이다. 둘은 분리할 수 없다. 권력은 반드시 ‘소통’되고 나뉘어야 한다. 권력자는 소통자이어야 한다. 불통은 정치적 패착이다. 권한의 책임과 권리를 나누지 못하게 하니까. 불통은 사회적 역기능이다. 정부와 국민이 서로를 오해하고 불신하고 등 돌리게 만드니까. 이것은 상생이 아니라 공멸로 가는 길이다. 이번 선거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소통하라.” “상생하라.”

한국교회도 상생의 소통을 새로 시작하자. 먼저 신학과 교리가 건전하고 다양한 교단과 교파 간의 상생을 이루자. 교리적 주장의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고 이단적으로 적대시하는 오류를 중단하자. 오히려 신학적 이론의 다양성을 모아 심대하게 토론하고, 세계교회들의 신학과 교리들과도 소통하면서 한국교회와 신학의 바른 현주소, 다양한 풍부함을 알리자. 그리고 동시에 정부와 교회, 정치와 신앙의 관계에서 교회의 ‘교회다움’을 견실하게 펼쳐나가자. 비굴한 정치적 아부를 제사장적 사명으로 곡해하거나 무자비한 정치적 비판을 예언자적 사명으로 오도하는 양극단의 함정에서 교회를 해방시키자. 어느 경우든지 “이럴 때 예수님은 뭐라 하실까?”라고 묻고 답을 찾는 방식으로 세상에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기로 결단하자. 회개와 용서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 서서 정치와 사회에 ‘진실된 위로’를 전하고, 지극히 작은 자에 대한 사랑을 기준 삼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기준으로 정치와 사회에 ‘공감적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경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