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전해져 오는 세계적인 스포츠 오락 중 하나인 투계(鬪鷄)에 가장 열광하는 민족은 필리핀 국민이다. 큰 마을에는 대부분 관중석을 갖춘 투계장이 있으며, 주말이면 TV에서 닭싸움을 생중계해 준다. 필리핀 남자는 집에 불이 나면 식구보다 싸움닭을 제일 먼저 챙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다리 뒤쪽으로 향해 있는 날카로운 며느리발톱은 수탉에서만 볼 수 있는데, 여성 비하 사상을 담고 있는 ‘며느리’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듯 쓸모없는 발톱을 의미한다. 이는 부척골이 돌출한 것으로 발톱과는 달라 발을 내디딜 때는 소용이 없지만 끝이 예리하고 강인해 공격 무기로서는 그만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 참가하는 프랑스 축구대표팀 유니폼에는 닭이 그려져 있다. 프랑스 축구협회의 로고이자 프랑스의 국가 상징이 바로 닭이다. 폴리네시아인들은 먼 바다로 항해를 나갈 때 목청 좋은 닭을 돛대에 매달아 뱃고동으로 사용한다. 자신의 고기와 알로써 인간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 온 닭은 조류 중에서 유일하게 12간지에 포함된 동물이기도 하다. 가축화된 동물이 별로 없었던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스페인의 탐험가 피사로가 잉카 제국에 도착했을 당시 이미 닭이 사육되고 있는 것을 목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 닭은 언제부터 인간의 손에 길들여져 가축이 된 걸까. 3000∼4000년 전 미얀마 말레이시아 인도 등지에서 야생닭을 길들여 가축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개 소 말 등 다른 가축들의 기원에 대한 연구가 유전자 차원에서 이뤄진 것은 있지만 닭에 대해선 아직 그런 연구가 없다. 인류와 친근하면서도 다재다능한 가축에 대한 대접치고는 소홀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영국 정부가 이에 대해 밝히려는 ‘닭장(Chicken Coop)’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4만 유로의 연구비가 지원되는 이 프로젝트에는 인류학에서부터 유전학에 이르기까지 20여명의 과학자들이 참가한다. 연구진은 DNA 분석을 통해 닭의 기원을 밝히는 것은 물론 고대 닭의 뼈와 알껍데기에 들어 있는 동위원소를 분석해 닭의 먹이 및 질병, 사육 패턴 등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추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완료될 경우 처음 닭을 사육한 인간들에 관한 정보는 물론 현재 양계업계가 당면한 조류독감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
[사이언스 토크] 닭장 프로젝트
입력 2014-06-07 06:08 수정 2014-06-07 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