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모든 것을 지배하는 규칙

입력 2014-06-07 01:47 수정 2014-06-07 06:30
사막의 원로 수도사들이 한목소리로 칭찬한 아가톤이라는 청년 수도사가 있었다. 엘리아스는 그를 마치 여호수아처럼 하늘의 태양을 멈추게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자로 보았고, 아가톤의 스승이었던 푀멘은 어린 제자를 ‘아버지여’라고 불렀을 정도로 일찍 경지에 이른 사람이었다. 그가 평생 기울였던 모든 노력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임종 때 제자들에게 남긴 유언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네.”

사랑의 계명을 실천

그의 최선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닫기 위해 아가톤은 3년 동안 입에 돌을 물고 살았다고 한다. 그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에 대한 불평을 지닌 채 잠자리에 든 적이 없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한 불평을 지닌 채 잠들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위의 금언들이 보여주듯이 그가 평소 마음에 품고 행한 말씀은 사랑에 대한 계명이었다. 사랑을 실천한 그의 이야기가 사막에서 교과서처럼 사용됐음을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수도사들이 모여 사랑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원로 조셉은 “여러분이 사랑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하며 아가톤의 모범을 예로 들었다.

한 수사가 아가톤을 방문했을 때 그에게 칼이 없는 것을 알고서 아가톤은 자기 칼을 주어 보냈다. 그 당시 바구니를 만들어 팔아 생활비를 버는 수도사들에게 칼이란 생존에 필요한 유일한 도구였다. 나의 필요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우선 공급하는 것이 그의 사랑이었다. 이런 그가 완전한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린 적이 있었다. “만일 내가 한센병 환자를 만나서 그에게 내 몸을 주고 그의 몸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나는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온전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물건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까지 기꺼이 주고자 원했다. 아가톤은 이 사랑을 말로만 하지 않았고 기회가 주어지면 행동으로 옮겼다. 어느 날 그가 물건을 팔러 마을 시장에 갔었는데 중병에 걸린 한 여행자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도 그 사람을 보살펴 주지 않았다.

아가톤은 방 하나를 빌려 그곳에서 그 환자와 함께 지냈다. 그는 손수 일을 하여 방세를 내고 남는 돈은 환자를 위해 사용했다. 그는 그 환자가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넉 달 동안 그곳에서 지낸 후 자기 수실로 돌아갔다. 아가톤이 생각한 온전한 사랑이란 주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배를 타고 항해할 때면 제일 먼저 노를 잡았고, 또 방문자들이 찾아왔을 때 제자들에게 맡기지 않고 손수 식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행한 것은 그의 내면을 가득채운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고 제자들은 말했다.

온전함은 사랑으로 증명해야

사막 수도사들이 금욕적 삶을 통해 이루려고 노력한 최고 수준의 덕은 사랑이었다. 온전함은 사랑의 정도로 증명되었다.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바뀐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금욕적 삶을 살았더라도 사랑에 무능하다면 실패한 인생이었다. 힘을 다해 자아중심의 이기적 죄성을 극복하고 마침내 올라야 할 고지는 사랑이었다.

원로 모세는 수도사들이 기도 금식 철야 노동 궁핍 묵상 독서 등 모든 것을 행하는 이유는 고린도전서 13장이 말씀하는 완전한 사랑에 도달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이 목적을 상실했다면 모든 것을 성취해도 무익하다고 말했다. 그는 “성경은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8)고 말씀한다. 은사들은 일시적이며 사라지는 것들이나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세상을 넘어 다음 세상까지 놀라운 효과를 미치는 것은 사랑밖에 없고,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으로 살 것이다.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사막이 지속적으로 제2, 3의 아가톤을 배출했다면 사막 교부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수도원이 시작되고 100년이 지났을 즈음 수도사들의 숫자는 많이 늘어났지만 첫 세대의 삶의 표준은 쇠퇴하였고 왕성했던 덕의 추구는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한 수도사가 과거와 현재의 수준 차이를 알고서 한 원로에게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거룩한 삶을 살려고 분투하지만 선배들처럼 은혜를 덧입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원로는 “그때는 사랑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으뜸 규칙이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이웃을 위로 끌어올려 주었소. 그런데 지금은 사랑이 점점 식는 가운데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이웃을 밑으로 잡아 내리려 애쓰고 있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지 못하는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사랑이 식으면서 은혜도 떨어지고 결국 사막 교부들의 시대는 세 번째 세대에서 저물고 말았다. 사랑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것은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사랑 외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막 수도원들의 흥망성쇠 역사는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으뜸 원리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김진하<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