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교육부와 첨예 대립 예고

입력 2014-06-06 10:43 수정 2014-06-06 17:10
6·4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학교 현장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 고됐다. 보수 정권의 교육부와 대립할 경우 교육 행정에 차질이 예상되는 만큼 학교 현장이 긴장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 징계 문제에서 역사교과서,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 무 상교육 등 민감한 현안도 쌓여 있다.

진보 교육감들과 교육부의 대립은 이미 예고된 상태다. 진보 교육감들은 선거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경쟁교육 중단을 주장했으며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사회 적 논의 추진’(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당선자 등)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입뿐만 아니라 ‘지방대 학의 균형발전’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구축 통한 서열체제 해소’ 등도 공동 공약으로 내걸어 교육 부의 업무 영역인 대학 구조개혁까지 손을 뻗고 있다.

진보 교육감이 연합해 정부에 맞설 경우 파괴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교육감 17명 중 13명이 진보 인사들이다. 시·도 교육감들의 협의기구인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76%를 차지한다. 학생 수가 많은 수도권과 부산 경남 등이 진 보 진영으로 넘어가 영향력은 더 크다. 유·초·중·고 전체 학생 718만여명 중 599만여명(83%)은 진보 교육감 지역이다. 학교 수는 전체 2만336개 가운데 1만6873개(82.9%), 교원 수 역시 전체 48만2686명 중 40만3398명(83.5%)이다(2013 교육통계).

교육감의 권한은 막강하다. 현행법상 교육감은 △ 학교 설립·폐지권 △교원 및 교육행정직의 인사권 △교육과정 편성 운영권 △예산 편성권 등 17개 권 한을 행사할 수 있다. 교육부가 대체적인 교육정책 방향을 정해도 이를 실행할 권한이 있는 교육청이 거부하면, 정책은 공중에 떠버린다.

‘진보 교육감 1기’ 당시 교육부-진보 교육감 갈등이 재 연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곽노현(서울) 등 진보 교육감들은 학교생활기록부 학교폭력 기재 등 각종 사안을 놓고 교육부와 소송까지 벌였다. 당시에는 교육부와 보수 교육감들이 진보 교육감들을 몰아붙이 는 모습이었다면 현재는 진보 교육감 수가 배 이상 늘어나 오히려 교육부를 포위한 형국이다. 벌써부터 세월호 참사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징계를 두고 교육부와 진보 교육감이 대립하고 있어 이미 ‘파워게 임’이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자사고 문제도 민감하다. 자사고는 교육감이 5년마다 평 가해 지정취소 또는 지정기간을 연장한다. 그러나 관련 법령에서 교육감이 자사고 지정을 취소할 경우 교육부 장관과 협의하게 돼 있어 자사고에 우호적인 현 정부와 마찰이 불가피하다. 지정취소 여부는 오 는 8∼9월 발표될 예정이다.

역사교과서 논쟁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진보 교육감들은 교학 사 한국사 교과서처럼 ‘친일 독재 미화 역사교과서’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교육부가 다 음 달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를 결정할 때 한국사를 국정으로 전환할 경우 진보 교육 감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그렇다고 당장 진보 교육감들이 정부와 대치하면서 긴장감을 높 일 것 같지는 않다. 조 당선자는 “교육정책은 무엇보다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문용린 교육감이 해온 정책 중 긍정적으로 평가된 자유학기제 진로교육 등은 적극적으로 이어나가겠다”고 속 도조절 의사를 내비쳤다. 특히 학교폭력 예방을 비롯해 낙후시설 보강 등 전반적인 학생 안전과 관련된 사항은 대체로 정부와 입장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러나 일선 학교 현장은 보수적인 교육부와 진 보적인 교육청 사이에 낀 상황이 됐다. 학교 입장에서는 양쪽 눈치를 보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자사고·국제중 폐지, 혁신학교 확대=진보 교육감들은 자사고, 국제중 등 보수 진영에서 만든 수월성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하는 한편 진보 진영의 ‘브랜드’인 혁신학교는 강화 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일반고 역량 강화는 자사고 폐지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은 진보 교육감들 의 공통된 시각이다.

입시명문을 지향하는 자사고는 우수 학생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일반고를 황폐화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전체 자사고의 절반에 해당하는 25곳이 서울에 집중돼 있다. 조 당선자는 “입시명문·특권학교로 전락하고 돈에 의해 진입 장벽이 쳐진 자사고가 공교육 전 체를 황폐화시킨다”고 지적했다. 다만 무조건 폐기가 아니라 일반고 교육을 황폐화시키지 않는 선에서 교육청 평가를 통과한다면 유지하겠다는 쪽으로 한발 물러섰다.

입시 비리로 물의를 일으킨 영 훈국제중 등은 일반학교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특목고의 경우 유치원·초등학교까지 내려온 특목고 바람을 억제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입시정책과 교과과정 개편도 불가피해 보인다.

혁신학교는 기 존 서울 경기뿐만 아니라 부산 경남 등까지 전국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조 당선자는 “초등학교에서 혁신교육을 받았더라도 중·고교로 가면 입시전쟁 때문에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는) ‘혁신학교 벨트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혁신학교는 주입식 공교육에서 탈피해 자율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교육 과정을 운영하자는 취지로 2006년부터 추진돼 왔다.

◇무상교육, 친환경 급식 확대=진보 교육감들은 무상급식 확대, 무상교육 확대를 공통적으로 주장한다. 광역단체장과의 관계에 따라 정책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고,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 서울의 경우 조 당선자와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가 참여연대를 함께 설립하는 등 관계가 돈독해 매끄럽게 협의가 진행 될 것으로 보인다.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성향이 보수와 진보로 갈리는 곳에서는 진보 교육감들의 공약 이 제대로 이행될지 미지수다.

보수 진영에서는 무상교육으로 막대한 재원이 소요돼 노후된 학 교시설을 보수하는 비용이나 냉난방비 부족 현상이 빚어졌다고 주장한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교육감들은 세월호 참사 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노후시설 재건축 등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진보 교육감 입장에서는 무상교육과 학교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므로 예산 갈증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 급식도 확대될 전망이다. 현직인 문용린 교육감은 서울시가 운 영하는 친환경유통센터에서 공급되는 식재료가 비싸다는 이유로 공급 비율을 낮췄다. 친환경 식재료 가 격이 비싸 다른 식재료에 들어가는 돈이 부족해지고 전반적인 급식의 질이 낮아졌다는 이유다. 그러나 조 당선자는 친환경유통센터에서 공급하는 식재료 비율을 현행 50%에서 70%로 높이고, 농약 검사 등을 더욱 깐깐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공립유치원 확대, 사립유치원 규제 등도 논란 예상=진보 교육감들은 공립유치원 확대를 내걸고 있다. 조 당선자의 경우 공립 단설·병설 유치원을 확충하고 저 소득층에 우선 입학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또한 사립유치원의 공공성을 강화해 유치원 비를 인하하고, 사립유치원 운영평가제를 도입해 감시할 계획이다. 이는 사립유치원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또한 현재 학교 주변에 규제완화 바람을 타고 들어설 예정인 숙박업·도박업·유흥 시설들을 모두 몰아내겠다고 약속했다.

기존 보수 교육감들이 펴는 사업은 대대적으로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조 당선자의 경우 현재 서울시교육청 사업의 80%를 감축하겠다고 했다. 그 밖에도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처우 개선을 약속한 진보 교육감들과 재정 등을 이유로 정규직 전환에 난색 을 표하고 있는 정부의 마찰도 예고돼 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