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 스위스월드컵 우승은 예상치도 못한 서독의 차지가 됐다. 당시 서독 선수들의 기량도 뛰어났지만 아디다스가 만든 스터드(발바닥 징) 탈부착식 축구화가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베른의 기적’으로 불리는 서독 우승 이후 스포츠용품 회사들은 가볍고 기능이 좋은 축구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원래 축구는 종목 특성상 축구공, 유니폼, 축구화 외에는 다른 장비가 거의 필요 없다. 축구공과 유니폼도 시간이 흐를수록 업그레이드됐지만 축구화만큼 드라마틱한 발전을 겪지는 않았다. 일반 신발 밑바닥에 가죽을 덧댄 초기 축구화는 1920년 아디다스의 창업자 아디 다슬러가 최초로 스포츠화를 제작한 것이 기폭제가 되어 발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1925년 처음으로 스터드를 댄 축구화가 나온 데 이어 1954년엔 탈부착식 스터드 축구화가 나왔다.
축구화를 상징하는 스터드는 선수들이 경기 중에 미끄러지지 않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지면과 신발 사이의 마찰력을 적절하게 유지해 준다. 마찰력이 너무 작으면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미끄럽고, 너무 크면 발목이나 무릎에 무리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잔디 길이나 특성에 따라 스터드의 종류도 다르다. 길고 푹신한 잔디에서는 13∼15㎜의 마그네슘이나 알루미늄 등 금속재질이 사용된다. 짧고 거친 잔디에서는 10㎜ 정도의 폴리우레탄 등 플라스틱 스터드가 사용된다. 또한 순간적인 방향전환을 많이 하는 공격수의 경우 스터드가 10∼14개, 안정된 지지를 필요로 하는 수비수의 경우 스터드가 6∼8개 정도다.
축구화 무게도 점점 가벼워졌다. 예전에 외피로 가죽을 쓸 때는 한쪽 무게가 300g을 넘었지만 점차 초극세사로 짠 특수섬유를 사용하면서 200g 밑으로 떨어졌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브라질 호나우두의 축구화 한쪽이 200g밖에 되지 않아 화제가 됐었는데,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메시의 축구화는 165g으로 더욱 가벼워졌다.
아디다스, 나이키 그리고 푸마는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각각 혁신적인 기술과 디자인의 축구화를 내놓았다. 아디다스는 ‘배틀팩’, 나이키는 ‘마지스타’, 푸마는 ‘트릭스’를 각각 후원하는 선수들에게 신겼다. 축구화가 많이 노출되는 월드컵 방송 특성상 선수가 신은 신발은 매출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장지영 기자
[월드컵은 스포츠용품 혁신사] 축구화에 붙였다 뗐다… 기적 낳은 ‘스터드’
입력 2014-06-07 06:08 수정 2014-06-07 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