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009년 6월 23일 오만원권을 처음 발행하던 날 인출 수요는 1조원(2000만장)에 달했다. 새로운 화폐에 대한 관심이 큰 데다 수표처럼 돈의 흐름을 추적당하지 않는다는 심리가 작용했다.
당시 한은은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커져 고액권이 필요하다며, 오만원권 발행으로 자기앞수표 대체 등 화폐의 제조·유통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만원권이 지하경제로 흘러들어 탈세를 조장하거나 불법 정치자금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오만원권은 시중 유통화폐 잔액의 3분의 2를 차지할 만큼 빠른 속도로 보급이 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회수된 오만원권은 눈에 띄게 줄었다. 그 많던 오만원권은 어디로 갔을까.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오만원권의 시중 발행 잔액은 발행 첫해인 2009년 말 9조9230억원에서 지난해 말 40조6812억원으로 늘었다. 한 해 7조∼8조원 규모로 증가한 셈이다. 시중에 풀린 화폐(기념주화 제외) 중 오만원권의 발행 잔액 비중은 2009년 26.6%에서 지난해 64.2%로 높아졌다. 올해 4월말엔 시중의 오만원권이 43조8510억원으로 전체 화폐 잔액의 65.9%를 차지했다. 시중에 보급된 오만원권의 장수는 8억7702만장으로, 국민 1인당 17.8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세수확보를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우자 2010년 41.4%, 2011년 59.7%, 2012년 61.7% 등 꾸준히 상승해온 오만원권 환수율이 지난해 48.6%로 뚝 떨어졌다. 금융기관이나 개인·기업이 오만원권을 어딘가에 쌓아두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오만원권 발행으로 탈세 등 지하경제 수요가 늘어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한은은 지난 3월 연차보고서에서 오만원권의 증가 원인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 강화되고 저금리로 화폐 보유 성향이 높아진 데 따른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지하경제 부문은 분석이 어렵고 과학적으로 따져볼 수 있는 원인만 들여다본 평가라는 단서를 달았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
1인당 18장 꼴로 풀렸는데… 꼭꼭 숨어버린 오만원권
입력 2014-06-06 10:43 수정 2014-06-06 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