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선택 이후-기획]] 학생들 ‘들들 볶는’ 현 교육체계에 과감한 메스 주문

입력 2014-06-06 03:06 수정 2014-06-06 15:29
6·4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 교육감이 대거 탄생했다. 보수·진보 후보가 박빙 승부를 벌인 광역단체장 선거와 완전히 양상이 달랐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 있으라'로 요약되는 순종형 교육과 성적 지상주의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했다.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을 보이는 40∼50대 학부모 세대가 정치이념에서 자유로운 교육문제를 통해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정서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왔다.


◇“앞만 보고 달리던 가치관 반성”=국민일보가 5일 정치·사회·교육·리서치 분야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한 결과 대다수는 보수 진영의 분열을 1차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세월호 참사가 입시 위주 교육에 회의감을 불러일으켰고 기존 교육제도에 대한 불신을 확대시킨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 여당에 비판적 시각이 광역단체장보다는 교육감 선거에 그대로 반영됐다”며 “앞만 보고 달려가는 한국사회 가치관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교육문제로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월호 문제가 한국의 교육에 특히 민감하게 비춰졌다”며 “중·고생들 교육에 관심이 많은 세대인 40대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산업화 세대인 기성세대가 자신과 환경이 다른 자녀들의 삶의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교호순번제(투표용지에 기재되는 교육감 순서를 선거구마다 다르게 표기하는 것)를 적용했는데도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은 시민들이 ‘무조건 1번’이 아니라 진보 교육감을 찾아 찍은 결과”라며 “학부모들이 세월호 참사로 떠나간 아이들을 보면서 성적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인생을 즐기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교육문제가 우선과제=교육감 선거에서 드러난 ‘쏠림 현상’은 황금분할을 이뤄낸 광역단체장 선거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강진령 경희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거 입시 위주 교육에서 탈피하자는 건 학부모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생각”이라며 “학부모들이 자신이 받았던 교육의 형태를 자녀들에게까지 주는 것은 원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은 “40대 학부모의 마음이 무너지면서 교육만큼은 정치와 상관없이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보수 진영은 진지한 고민을 보여주지 못한 반면 진보 진영은 혁신학교로 대표되는 개혁 정책을 내놓아 마음을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번잡하고 어려운 입시 정책에 누적된 피로감이 표현된 것이란 해석도 있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 이사는 “대입 제도는 복잡해졌고 사교육은 줄지 않았으며 경제 상황마저 나빠진 데 대해 실망한 학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진보 교육감의 교육개혁 신뢰=진보 진영 후보들이 소모적 이념 논쟁에서 탈피해 유권자의 교육개혁 요구에 화답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진보 진영 후보들은 중도 노선을 채택해 이전보다 훨씬 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며 “반면 보수 진영 후보들은 전교조와 대립각을 세우며 여전히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지적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모든 학부모들이 고민하는 문제가 학생들을 ‘들들’ 볶는 현재 교육체계인데도 그동안 정부는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진보 교육감들이 미래세대와 관련된 교육개혁을 일관되게 내세우며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었다”고 분석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교육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권자들의 인식이 훨씬 더 전향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다만 과반 득표에 성공한 진보 교육감이 많지 않아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진보 진영의 단일화 효과가 선거에 영향을 미쳤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선거는 큰 논리적 관계를 찾기 어려운 ‘스토리’가 없는 선거”라고 진단했다. 정부와 교육정책을 두고 이념 대립이 격화되리란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진보 교육감들이 교육 현장에서 마찰과 혼란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백상진 김동우 황인호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