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2: 22∼32, 마 13:44∼52
천국을 흔히 하늘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천당, 하늘에 있는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천국)는…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고 하셨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마 5:3)이라고 하셨으며,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마 13:31)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말씀도 ‘지금 여기(now and here)’에서의 삶과 무관하게 우주공간 어디엔가 떠 있는 나라, 혹은 집이라는 의미로 쓰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춘 보화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들어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는 어떤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대가를 내고 그것을 선택하는 것, 그 설렘과 고뇌와 용단과 그로 말미암은 기쁨의 전 과정이 바로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쉽게 풀어서 옮기면 이렇습니다. “정성껏 살렴. 힘들어도 해내면 천국에서 살게 될 거야.”
창세기 본문에서 야곱은 두 아내와 두 여종, 그리고 열한 아들을 데리고 얍복 나루를 건넙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 ‘야곱, 참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해 얍복 나루를 건널 새 그들을 인도해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창 32:22∼23). 야곱은 처자식을 확실하게 건사하고, 돈도 제법 벌었고, 여러 종들까지 거느릴 정도의 성취를 이룬 사람입니다. 그러나 24절부터가 진짜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라고 합니다. 인생의 숙제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입니다. 세상의 성취를 넘어서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살아왔는지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해 깊은 밤 홀로 남아 기도의 자리에 서는 영의 사람, 그가 바로 야곱이었습니다. 지금 야곱은 참으로 어렵고도 두려운 시간 속에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이뤄온 모든 것을 송두리째 부정해야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건 죽을 각오 없이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신비하게도 누군가 나타나 그의 씨름 상대가 되어 줍니다. 기도의 신비입니다. 아무리 벅차고 힘들어도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고 무릎을 꿇는 순간 어디선가 수호천사 같은 존재가 나타나 그 기도를 돕기 시작하는데, 바로 하나님의 응답의 손길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묻고 대답하는 경지, 본질을 놓고 하나님을 상대(相對)하는 경지에 서게 됐습니다.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창 32:30). 얼마나 아름다운 영적 성숙이요, 얼마나 소중한 간증입니까. 참으로 멋진 인생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양적, 질적으로 어느 정도 성장한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숙제는 점점 쌓여만 갑니다.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도전할 때 야곱의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멋진 인생, 찬란한 인생을 살도록 지음 받은 것이 우리 모두의 인생인 줄 믿습니다. 하루하루 후회 없는 선택으로 지금 여기의 삶 속에서 천국을 사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승환 목사 (원주 새생명교회)
[오늘의 설교] 천국을 살기 위하여
입력 2014-06-06 03:06 수정 2014-06-06 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