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김지숙’이었다. 1977년 극단 현대극장에 입단해 ‘뜻대로 하세요’ 등 수많은 연극 무대에 서며 상이란 상을 죄다 휩쓴 연극배우 김지숙(58). 1991년 모노드라마 ‘로젤’의 인기는 그녀 연기인생의 최전성기였다. 김지숙은 한국 연극계의 아이콘이자 뭇 남성 팬의 마음을 흔들어 놓던 신비로운 눈망울을 가진 여인이었다. ‘로젤’을 보기 위한 극장 앞 줄은 끝이 안 보였다.
93년 그녀는 한 권의 수필집을 냈다. ‘대통령도 창녀도 될 뻔한 여자’였다. 자극적인 제목의 이 책은 사실 ‘로젤’의 담론이기도 했다. 불행한 삶을 살아온 30대 초반의 창녀 ‘로젤’. 김지숙은 이후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작품을 고를 때 ‘소외된 삶과 가난한 이웃’의 이야기를 우선했다. 왜 그런지는 자신도 몰랐다.
“78년 연극을 시작해 80년도부터 늘 주인공을 했어요. 365일 무대에 서다시피 했죠. 무대, 연습실, 집이 전부였어요. 연극에 미쳐 있으니 결혼이 눈에 들어올 리 없죠. ‘로젤’ 할 때는 당시 돈으로 월 8000만∼1억원을 벌었어요. 집을 몇 채 샀죠. 2000년대 들어선 고등학교 100곳을 돌며 자살 예방 연극 활동을 했고요. 그러면서 극단 ‘전설’을 이끌었죠. 하지만 극단 하면서 재산 다 말아먹고요. 하하.”
최고의 연극배우, 영화 및 TV 연기자, 성균관대 교수 5년, 극단 대표의 삶은 그렇게 쏜살같이 지났다.
지난달 말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김지숙은 연극 입문할 때처럼 전단을 붙이고 표를 판다고 했다. 그런데도 표정이 밝다. 2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 올려지는 기독교 메시지를 담은 연극 ‘현자 나탄’의 예술감독을 맡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죠. 독일 근대 희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트홀트 레싱의 마지막 희곡이고요. 레싱은 1747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라이프치히에서 신학 공부를 했죠. 나탄을 통해 예수의 사랑과 관용, 지혜가 드러납니다. 구원은 소유가 아닌 사랑으로써 오더라고요. 제가 그간 너무 많이 소유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김지숙은 ‘잘 나가던 시절’을 “기고만장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어느 날 돌아보니 나이 50대에 접어든 자신을 보았다.
“‘내가 뭘 못해봤지’ 하고 생각하니 결혼을 못했고, 애도 못 낳아 본 거예요. 하지만 늦었죠. 급격히 외로워졌고요. 그런데도 생각은 늘 20대 여배우인 거죠. ‘나는 누가 구원하나’ 이러면서 지내는데 그때 하나님이 제게 다가오셨어요. 제가 찾은 게 아니라 그분이 불쑥 오셨어요. 20대 초반 목사님이 헌금을 너무 강조해 그게 싫어 교회 떠난 제게요.”
김지숙은 어린 시절 알코올중독 아버지 때문에 상처 받아 자기의 세계만을 구축했다. 우울한 소녀였다. “배우를 하지 않았으면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과 창녀’란 말이 이해됐다.
“그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었으나 저만은 정말 사랑해주셨죠. 지금은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를 찾아 사랑해 주시네요. 나탄과 같은 지혜를 주셔서 교회 출석하게 도와주신 거죠. 지금은 서울 보광중앙교회에서 주일성수를 하고 있습니다. 몇 십년 만에 교회 나가 찬송을 부르니 그냥 눈물이 나요. 서울 홍은동에서 성극 ‘크리스마스 캐럴’에 출연했던 여중생이었거든요.”
글=전정희 선임기자·사진=허란 인턴기자 jhjeon@kmib.co.kr
50 넘어서의 깨달음 구원은 소유 아닌 사랑…
입력 2014-06-07 01:47 수정 2014-06-07 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