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재중] 은행의 탐욕과 자기통제 상실

입력 2014-06-06 03:06 수정 2014-06-06 11:06

민간인 신분으로 공무원에 준하는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무자본 특수법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면 왜 공무원에 준하는 처벌을 받게 될까. 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발권과 지급결제, 외환관리, 금융기관 조사 및 감독 등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받은 셈이다. 그래서 한은과 금감원 직원들에게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시중은행은 한국은행과 거래하는 금융기관이다. 보험회사나 상호저축은행 등은 한국은행법상 금융기관이 아니다. 시중은행은 한국은행에서 1% 수준의 저리로 돈을 가져다가 대출을 일으켜 이윤을 남기는 일종의 특혜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방만한 경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거나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시중은행의 손실을 처리해 준다. 제2금융권이 부실 경영으로 영업정지되거나 문을 닫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왜 그럴까. 시중은행은 우리 경제의 혈관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의 핵심기관이기 때문이다. 혈관이 찌꺼기로 막혀 있으면 혈액(돈) 순환이 되지 않아 실물 경제가 건강할 수 없다.

요즘 시중은행은 비리와 권력다툼으로 얼룩져 있다. 최근 국민은행에서는 지점 직원이 수억원대 회사 자금을 횡령한 사건에 연루돼 금감원이 조사에 나섰고, 지난해에는 국민주택채권 90억원을 횡령한 사건이 발생해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신한은행에서는 한 직원이 한 달 간 1억원가량을 빼돌려 탕진했고, 기업은행에서는 지점 직원이 고객에게 지급하기 위해 창고에 보관한 시재금 등 1억5000만원을 몰래 쓴 사실이 적발됐다. 부실 대출이나 불법 행위에 연루된 직원들도 있다. 국민은행 도쿄지점장 등이 지난해 5000억원대 부당 대출 혐의로 구속됐고, 씨티은행 직원은 고객 정보 유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처럼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데도 은행들의 내부 통제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은행들은 직원 비리가 터지면 쉬쉬하는데 급급하고, 금융감독 당국의 대응도 사후약방문식이다. 금감원의 팀장급 간부까지 금융사고에 연루된 판국이니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최근 런던에서 열린 ‘포용적 자본주의’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대형 은행들이 세계 금융위기를 겪고도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금융위기 이후 6년이 지났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개혁에 저항하고 있으며, 고액 보너스를 위해 위험성 높은 비즈니스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몇몇 주요 은행은 가장 기본적인 윤리규범마저 위반했다며 리보금리와 외환시세 조작, 자금세탁 등을 사례로 들었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공기(公器)’에 해당하는 시중은행 직원들에게도 공무원에 준하는 윤리 의식과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은행 직원의 횡령이나 고객 정보 유출은 단순히 돈이나 정보를 훔치는 게 아니라 금융 거래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신뢰를 깨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도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국내 시중은행은 직원 4명 중 1명꼴로 1억원 넘는 고액 연봉을 받는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받는 급여야 탓할 일은 아니지만, 그 소득의 원천은 바로 금융의 공적 기능과 소비자의 신뢰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도 은행이 탐욕에만 눈이 멀어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월가의 시위’와 같은 금융소비자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김재중 경제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