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새겨진 문화와 민족 코드 (9) 프랑스] 이주민 유망주 발굴… 인종차별 없는 최강 ‘외인부대’

입력 2014-06-06 03:06 수정 2014-06-06 11:06

프랑스 축구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외인부대’다. 국가대표 선수 상당수가 프랑스령이나 아프리카 이민자 출신, 또는 이민자 2세다.

프랑스는 전력 강화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대표팀에 유색인 선수들을 받아들였다.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프랑스 대표팀은 자국 선수들로 꾸려졌다. 하지만 점차 전력이 떨어지면서 프랑스령이나 아프리카 출신의 유망주들을 발굴해 대표팀을 구성했다.

외인부대 같은 프랑스 대표팀이 강한 이유는 평등을 추구하는 프랑스의 교육 덕분이다. 프랑스는 외국인과 이들의 자녀들에게까지 우수하면서도 값싼 교육을 제공한다. 여기엔 축구 유소년 양성 과정도 해당된다. 알제리 산악 부족민의 아들이었던 지네딘 지단(42)은 유소년 교육의 혜택을 받아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했다.

프랑스는 ‘오일머니’를 앞세워 선수들을 쇼핑하는 카타르 같은 나라와 다르다. 프랑스 대표팀은 유색인 선수들을 사들인 것이 아니라 키워냈다. 이것이 프랑스 축구의 특징이며 프랑스의 힘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선수들은 용병이 아니라 애국심이 넘치는 시민이다. 프랑스 대표팀에 피부가 검은 선수들이 많다고 조직력이 약할 것이라고 오판해선 안 된다.

영국이 축구를 만들었다면 브라질은 축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프랑스는 축구에 조직을 부여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이 창설된 곳이 바로 프랑스다.

프랑스는 1954 스위스월드컵에서 레이몽 코파라는 스타를 앞세워 사상 처음으로 본선 무대를 밟았다. 코파와 쥐스트 퐁텐 등 1세대가 이끈 프랑스 축구는 훌륭했지만 황금시대에 접어든 브라질의 그늘에 가렸다. 이어 2세대 선두주자 미셸 플라티니를 앞세워 1978 아르헨티나월드컵에 도전했으나 결과는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4년 후 프랑스는 스페인월드컵에서 서독의 벽에 막혀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프랑스는 1998년 마침내 이주민들로 구성된 역대 최강의 팀을 만들었다. 3세대의 선봉장은 바로 지단이었다. 지단이 이끈 프랑스는 1998 프랑스월드컵 결승전에서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을 3대 0으로 완파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샹젤리제 거리엔 수백만명의 인파가 쏟아져 나와 축제를 벌였고,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70%까지 솟아올랐다.

승승장구하던 프랑스 축구는 세대교체 시기를 놓쳐 2002 한일월드컵에서 망신을 당했다. 지단은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진공청소기’ 김남일에게 꽁꽁 묶였고, 허벅지 부상까지 당했다. 지단의 부상으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프랑스는 조별예선에서 한때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에 0대 1로 패해 자존심을 구겼다. 예선 탈락이 확정된 후 지단은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뒷문으로 슬그머니 나가자.”

프랑스가 한일월드컵에서 부진했던 건 지단의 부상 때문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변화를 추구하지 않은 안일함 때문이었다.

2006 독일월드컵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에 우승컵을 내준 프랑스는 2010 남아공월드컵에선 조별예선 1승2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둬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축구에 인종은 없다”고 외치는 프랑스가 천신만고 끝에 진출한 브라질월드컵에선 어떤 드라마를 연출할지 주목된다.

마이애미=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