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진] 지금부터가 시작

입력 2014-06-06 03:05 수정 2014-06-06 11:06

아휴, 애들 지금 수업 준비한다고 우리는 쳐다보지도 않는데. 이런다고 애들이 투표를 하긴 할까. 아니 이게 자기들 문제라고 생각은 할까. 아마 걔네들은 수업 방해한다고 싫어할지도 몰라. 돈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등록금 인상에 왜 반대하냐고. 그냥 공부하다 졸업만 하면 됐지, 교수들이랑 학생자치회의 같은 게 꼭 필요하냐고 할지도 몰라. 학교 앞에 백화점 들어오는 게 왜 나쁘냐고 하던 애들도 많던데. 그게 다 뭘 모르니까 그러는 거야. 자치니, 권리니, 자유니, 정의니 뭐 이런 단어만 들먹여도 눈살 찌푸리는 애들도 있긴 하더라. 날 아예 이상하게 보더라니까. 학생회가 정말 학생들을 위하는 거냐고 대놓고 묻던데. 사실 우리 평소에 그렇게 친하진 않잖아. 근데 작년에도 투표율 미달이었다며. 도서관이랑 식당이랑, 그 많던 애들 중에 그럼 안 찍은 애들이 반도 넘는단 말이야.

대학 시절 어쭙잖게 학생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해마다 늦가을이면 학과, 단과대, 총학생회 등의 크고 작은 선거를 치렀다. 몸소 ‘출마’해 본 적은 없지만 유니폼을 입고 노래와 율동도 하고 구호도 외치는 유세활동엔 빠지지 않았다. 강의와 강의 사이 쉬는 시간에 짬을 내 이뤄지던 유세는 늘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낯익은 친한 친구들이야 한두 번 눈도 마주쳐주며 관심을 보였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무관심했다. 그래도 경합을 치르는 후보들끼리는 나름 불이 붙어 밤새 학교에 남아 ‘선거 전략’을 짜기에 바빴다. 그러나 투표 당일, 쌩하니 지나가는 학생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투표를 독려하던 선배들의 모습은 내 후보의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늘 선거의 끝을 씁쓸하게 장식했다.

한정된 삶의 공간인 학교 선거와 나의 직업, 돈, 생활, 가정, 미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의 선거가 같을 순 없다. 그러나 그때를 돌이켜보면 참 묘하게도 많은 것이 닮아 있다. 그래 봤자 내 일 아니라는 이기심과 무관심. 그래 봤자 어차피 너흰 관심 없으니 우린 우리 생각대로 할 거라는 자만심과 무관심. 낮은 투표율은 쌍방의 문제였다.

새벽까지 방송을 지켜보게 만든 지방선거가 막을 내리지만 진짜 정치는 이제 시작이다. ‘가만히 있지 말라’는 뼈아픈 교훈을 새겼던 2014년 선거 후 무엇이 바뀔 수 있을까. 시민인 우리들의 정치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그 이전에 시민의 삶과 목소리에 대한 정치인들의 진지한 관심이 바탕이 될 때 생활 속 작은 것 하나라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