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현(21)씨는 지적장애 청년이다. 그는 에이블아티스트이다.
박씨는 최근 서울 대학로 샘터갤러리에서 같은 에이블아티스트 2명과 함께 '같이놀자展'을 가졌다. 태현씨는 색종이를 주재료로 만화 캐릭터나 곤충, 바다생물 등을 끊임없이 만든다. 전시 기간 그는 작품 몇 점을 팔았다.
에이블아트(Able art)는 '장애우는 보살펴야 된다'는 편견을 깨는 새로운 예술 사조다. 서구에선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 잡았으나 우리나라에선 이제 첫발을 내딛은 수준이다. 1970년대 일본에서 시작돼 프랑스에서 '베리 스페셜 아트(VSA)'로 활성화됐다.
장애인의 예술적 재능과 개성은 일반 작가들과 달리 태고의 순수함과 영성이 배어 있다는 데서 출발한 이 운동은 세계 각국으로 그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 ‘문명화’ ‘교육화’되지 않은 장애인만의 영성이 하나님과 닿아 예술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에이블아트운동은 장병용(56·등불교회) 목사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는 현재 사단법인 에이블아트 대표로 경기도 수원시 서수원로 에이블아트센터를 건립해 왕성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2010년 세워진 이 센터는 국내 최초 장애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시각 및 공연 예술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다. ‘허름하고 누추한’ 센터가 아니라 국내 정상급 건축가가 설계한 지상 7층, 지하 2층 규모의 건축 미학이 드러나는 현대건축물이다.
그 안의 콘텐츠 또한 일반 예술 공간을 앞선다. ‘장애인을 위한 배려의 공간’이 아니라 ‘일반인과 함께하는 장애인 선도의 공간’이다. 에이블아티스트 양성과 지원 사업, 아트 비즈니스 및 국제협력 사업, ‘우리동네 예술 프로젝트’와 같은 프로젝트 사업 등이 이 공간에서 이뤄진다. 미술 전업 및 예비 작가 프로그램인 ‘에이블아티스트 스튜디오’ ‘새파란아티스트 스튜디오’가 있고, 음악의 에이블아트 오케스트라가 운영된다.
그 아티스트들이 영성 충만을 받는 예배는 공연 공간을 겸한 지하 예배당 ‘등불교회’에서 올려진다. 장 목사는 “장애인이 결핍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그들이 표현하는 예술 행위를 통해 알 수 있다”며 “그들이 원초적 생명력을 표현한 ‘무의식적 놀이’의 작품은 장애 자체가 예술이고, 창조 행위이자 구원의 몸짓임을 말한다”고 했다. 미술평론가들이 ‘병적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수식은 뒤집으면 ‘원초적 생명력의 표현’인 셈이다.
이 센터에서 이뤄지는 모든 내용의 철학은 ‘자부심’이다. ‘장애인도 예술을 한다’가 아니다. ‘에이블아티스트 작품’이라고 당당히 내거는 것이다. 국내 권위 있는 화랑 ‘금산갤러리’ ‘샘터갤러리’ 등에서 전시하는 이유도 이러한 자부심에서 비롯됐다. 그에 걸맞게 일부 작가 작품은 솔드 아웃(sold out)될 정도로 경쟁력을 갖췄다.
“80년대 중반 경기도 여주에서 목회(대신제2교회)를 했어요. 당시 여주직업훈련원에서 전자기술을 배우던 장애인 교인이 있었는데 그가 어느 날 생을 비관해 남한강에 투신했습니다. 음악 재능이 뛰어난 교인이자 친구였는데. 그는 ‘전생에 죄가 있어 사생아, 혼혈아’로 태어났다고 절망한 것이었죠. 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장애우의 2차 장애는 교육장애, 3차는 마음의 병입니다. 이를 극복하고 싶었어요.”
장 목사는 이후 유럽과 일본을 돌며 2, 3차 장애를 차단하기 위한 선진국의 시스템을 배우고자 했다. 그리고 ‘에이블아트’를 받아들인 것이다. “센터 안에 사회적기업 ‘에이블 팩토리’ 등을 운영해 자립하고 있습니다. 센터 건물을 지을 때 주민들이 혐오시설이라고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강남에 내놔도 손색없는 건물과 그 공간에서 이뤄지는 내용 때문이었죠. 센터는 주민이 이용하는 문화시설입니다.”
따라서 센터 입주 작가가 되고자 하는 경쟁이 치열하다. 김선화(인천 초대교회 전도사)씨는 인천 구월동에서 수원까지 아들 태현씨를 보내고 있다. “아이를 센터에 데리고 다니면서 제가 은혜 받아 전도사가 됐습니다.” 김 전도사의 말에서 이 센터의 위상을 알 수 있었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고난… 영성을 만나 예술 되다
입력 2014-06-07 18:43 수정 2014-06-07 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