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사파이어빛의 카리브해에 떠 있는 도미니카공화국. 나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복음의 은혜를 보고 싶었다. 미숙한 믿음으로 광야를 헤맸다. 감사하게도 산티아고에서 카리브해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전재덕 목사님과 연이 닿았다. 나그네를 향한 아낌없는 배려로 편한 잠자리를 제공받고, 수도 산토도밍고까지의 자전거 비전 트립을 착실히 준비할 수 있었다. 만날 만한 이를 준비하신 하나님의 섬세한 계획이었다.
이어진 광야 여정. 보통 마을 공터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많이 만나는데 이 나라에선 글러브와 전용 야구공으로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역시 야구 강국답다. 여덟 살 아이가 마을 어귀에서 조악한 과일 묶음을 팔고, 열 살 아이가 길에서 군고구마를 파는 땅, 내 눈엔 자꾸만 아이들이 들어왔다.
그러다 한 마을에 들어서자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가난하고 고단한 아이들이 아니었다. 천진난만한 느낌이 아니었다. 대낮에도 생기 잃은 눈빛, 정중동 속에서 매서운 날카로움이 눈동자에 있었다. 내 심장을 할퀴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간 내가 범죄의 대상이 될 것 같았다. 버려진 마을이었다.
“경찰도 터치할 수 없는 무법지대입니다. 여기에선 질서라는 게 없어요. 자기들이 먹고 살만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적잖은 남자들이 마약 유통이나 갱단에 관련되어 있고, 성매매로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여성들도 있고요.”
2004년 이곳에 교회를 개척한 무명 선교사의 말이었다. 상대적 박탈감이 극에 달한 빈민 지역이다. 타인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 배타적이고,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한 곳이다. 그는 어떻게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교회를 세울 수 있었을까. 선교사 가정이 오랜 시간을 들여 현지 주민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어떤 전략이나 시스템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
진심, 즉 진리로 무장된 복음과 그 복음이 향하는 한 영혼을 향한 곡진(曲盡)한 마음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그의 영광을 기뻐함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진리를 알아가는 놀라운 지혜에 대한 사모함 또한 계층불문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전하는데 필요한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놓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은 이 빈민촌에 2004년, 다리 밑 교회가 세워졌다. 딴 게 아니다. 마을밖엔 고도화된 문명의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보이고, 그 아래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이들이 밀리고 밀려 백척간두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곳이 이 마을이다. 그래서 교회 이름도 다리 밑 교회다. 한 가정의 담대한 사명이 나의 열정을 깨웠다. 선교지에 막연히 교회를 크게 짓고, 많이 짓는 것이 아닌, 정말 필요한 곳에 올바르게 짓는 모습이었다.
빈민가의 영적 회복이 일어났다. 동시에 마을 아이들의 교육기관이 되어줬다. 처음 교회가 생겼을 때 돌을 던지며 쫓아내려 무던히 애쓰던 사람들이 이제는 예배를 드린다. 자기 자녀를 보내며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여전히 교회는 빈민가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고, 밤에는 위험하다. 그러나 봄에 움트는 싹은 겨우내 인내한 추위가 안겨주는 축복임을 이들은 알고 있다. 도미나카공화국을 자전거로 달리던 나는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다. 좀 더 마을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공급되는 곳에서 서둘러 떠날 이유가 없었다.
(작가·vision-mate@hanmail.net)
[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16) 소외된 빈민촌에 세운 교회-도미니카공화국에서
입력 2014-06-07 01:47 수정 2014-06-07 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