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학생 수백명이 희생된 경기 안산은 표심마저 얼어붙었다. 전국 투표율이 56.8%를 기록한 4일 안산 단원구는 47.8%에 그쳤다. 경기 부천시 오정구(46.1%), 충남 천안시 서북구(46.3%)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낮았다. 단원구에는 피해 학생들이 다녔던 단원고가 있다. 옆 동네 안산 상록구도 48.3%에 머물렀다.
◇안산의 ‘정치 냉소주의’=전국 투표율 56.8%는 지방선거가 시작된 1998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치였지만 안산은 예외였다. 지난주 사전투표율도 8%대로 전국 최저 수준이었다. ‘정권 심판론’이 강하게 일 것이란 추측과 다른 결과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정부와 야당의 무력함은 이 도시에 정치적 냉소를 깊게 뿌리내렸다.
글로벌리서치 지용근 대표는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낮은 투표율로 이어졌다”며 “가족과 이웃을 잃은 마당에 국가에 기대할 게 없다는 무력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컨설팅 윤희웅 여론분석센터장은 “추모 분위기 때문에 적극적인 선거유세가 벌어지지 않은 영향도 있겠지만, 안산시민들이 세월호 사태에 대처하는 정치권의 무능에 실망해 ‘투표로 바꾸자’는 여론보다 ‘투표해봤자 바뀌겠냐’는 냉소주의가 확산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실제 투표장을 찾은 한 시민은 “이미 세월호 참사로 상처를 입은 안산 사람들은 투표로 상황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그래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투표장에 온 것”이라고 말했다.
단원고 2학년 고(故)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씨는 SNS에 딸의 영정사진을 들고 투표한 사진을 올렸다.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인 유씨는 “저도 예은이와 함께 투표하고 인증샷도 찍었습니다. 얼른 스무 살이 돼서 투표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투표장에 가게 됐네요”라고 적었다.
가족대책위 김병권 대표도 투표 후 “사고 진상조사와 안산시민은 물론 실종자 가족을 위해 끝까지 신경써줄 사람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단원고 교문에는 투표소 변경 안내문이 붙었다. 선관위는 애초 단원고를 제4투표소로 지정했으나 세월호 참사로 인근 안산유치원에서 투표를 진행했다. 안산유치원 투표소 입구에는 노란 리본이 내걸렸다. 아이 손을 잡고 투표소를 찾은 박모(50·여)씨는 “엄마의 입장에서 투표했다. 공약집도 꼼꼼히 더 따져봤다. 내 표가 제2의 세월호를 막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산·진도 표심은=안산시장 자리를 놓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략공천을 받은 제종길 후보와 새누리당 조빈주 후보가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투표율까지 낮은 터라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줄곧 당선자 윤곽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됐다.
두 후보는 공약도 비슷했다. 모두 세월호 참사의 ‘치유’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제 후보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지속적인 추모 분위기를 이어가겠다”며 “동시에 피해 가족과 주민을 위해 생계·복지·취업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조 후보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안산시민들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시급하다”며 “국립트라우마센터를 유치하고 세월호 희생자 추모공원을 조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전남 진도의 투표 분위기는 엄숙했다. 안산과 달리 74.6%의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팽목항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김모씨는 “실종자 가족들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내 아이를 지킨다는 마음으로 투표했다”고 말했다. 주민 김만호(74)씨는 “꿈을 펴보지도 못한 어린 아이들을 생각해 제대로 된 안전 공약을 제시한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진도군수에는 현직 군수인 새정치민주연합 이동진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 이 후보 역시 가장 중요한 공약으로 ‘안전’을 내세웠다.
김유나 조성은 기자 spring@kmib.co.kr
[6·4 국민의 선택] 정치권에 불신·실망… 안산 표심마저 얼어붙었다
입력 2014-06-05 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