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으로 촉발된 중동·아프리카의 아랍권 민주화 운동, 일명 ‘아랍의 봄’이 짧고 혼란스러웠던 3년을 뒤로 한 채 저물고 있다. 가장 성공적인 혁명 사례로 주목받던 이집트는 군사정권을, 최악의 희생양 시리아는 독재정권의 연장을 3일(현지시간) 각각 선택하면서 아랍이 다시 ‘민주주의의 겨울’로 복귀했음을 알렸다.
이집트선거관리위원회는 군 실세 압델 파타 엘시시(60) 후보가 96.9%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30년 만에 몰아내고 첫 민선 대통령인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을 출범시켰던 이집트의 시민혁명은 군사정권 귀환과 함께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엘시시의 집권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이집트의 최대 기득권 세력이었던 군부가 재차 정국의 전면에 섰음을 확인시켜준다. 엘시시는 40여년간 복무한 군인으로 자신이 축출한 무르시 정권 초기 국방장관을 지냈다.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던 지난해 국영TV에 나와 무르시 축출을 공개 발표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고 지지자들 사이에서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는 당선 후 첫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제는 이집트 재건을 위해 일을 할 시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47.4%에 불과한 투표율에서 드러나듯 군부 재집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 정국 수습에는 상당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집트 혁명의 주축이자 무슬림형제단 중심의 무르시 지지파들이 대선 결과에 불복해 ‘제3의 혁명’을 촉구했다. 기존 비폭력·평화주의 기조에서 벗어나 강경투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무르시 지지세력은 엘시시의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어왔고 군부의 진압과정에서 1500명 넘게 숨졌다.
미국 백악관은 성명을 내고 “이번 대선이 정치적으로 제약된 상황에서 치러졌다는 우려가 있다”며 “엘시시 당선자에게 이집트 국민의 보편적 권리를 보호하는 개혁 조치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수일 내 엘시시와 통화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치러진 시리아 대선에서는 바샤르 알아사드(49) 대통령의 3선 연임이 확실시 된다. 민주주의 과도정부 설립과 내전 종식에 대한 시리아인들과 국제사회의 요구를 무시해온 알아사드 대통령은 부친 하페즈로부터 반세기간 이어온 철권통치를 연장하게 됐다.
유럽연합(EU)은 시리아 대선 결과를 “불법선거”라고 규정하며 알아사드 대통령을 향해 “시리아 국민들의 정치적 의지가 제대로 표현될 수 있도록 정치적 타협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시리아는 시민봉기 이후 내전과 대량학살로 전 국민의 3분의 1이 난민 신세에 처해 있다. 특히 알아사드 가문은 이슬람 시아파 계열의 알라위파에 속하지만 국민의 절대 다수는 수니파이다. 내전 자체가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리전 양상을 띠면서 아랍연맹 안에서도 각국이 서로 다른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서방국가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사이 러시아, 중국이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아랍에 불었던 자유와 민주주의 바람이 잦아드는 상황에서 그 진원지인 튀니지 정도가 올해 초 남녀평등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새 헌법을 채택하고 대선과 총선을 예고하며 아랍 내 민주화의 미약한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아랍의 봄 초기 정권 교체에 성공했던 예멘은 정부와 반군의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3일 정부군과 반군의 유혈 충돌로 최소 120명이 사망했다. 리비아 역시 아흐메드 마티크 신임 총리가 2일 취임했지만 격렬한 내전이 진행 중이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아랍, 봄날은 갔다
입력 2014-06-05 0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