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지방선거에서 재선된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는 인권변호사를 거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해오다가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단일후보로 승리한 인물이다. 서울의 수장을 연임하게 됨으로써 향후 대중정치인으로서의 입지도 강화될 전망이다.
박 당선자는 1956년 3월 경남 창녕에서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6째로 태어났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에서 유학 중이던 친형의 뒤를 따라 상경, 경기고에 입학했다. 법조인의 꿈을 꾸며 재수를 거쳐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다.
하지만 입학 3개월 만인 1975년 5월 고(故) 김상진 열사의 추모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투옥됐고 학교에서 제적됐다. 박 당선자는 “당시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중 우연히 참여하게 됐는데, 이 사건이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했다.
4개월 옥살이 후 출소했지만 복교가 되지 않자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 독학으로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구지검 검사로 임용됐다. 그러나 6개월 만에 사표를 쓰고 검찰을 떠났다. “사람 잡아넣는 일이 맞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1983년 변호사 개업을 한 뒤 1986년 고(故)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부천서 성고문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보도지침사건’ 등 주요 시국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이후 박 당선자는 1991년 8월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미국 하버드 법대 객원연구원으로 지내며 선진국 제도와 시민단체의 역할을 살폈다. 1994년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하며 인권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 참여연대는 사법개혁운동, 소액주주운동, 국회의원 낙선운동 등 합법적 방식으로 사회개혁을 시도했다.
또 미국의 기부문화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안전망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2000년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세웠다. 아름다운재단은 이후 기부문화 확산을 목표로 1000억원 가까운 기부금을 모았다.
박 당선자는 아름다운재단 등이 자리 잡히자 상임이사에서 물러나 2006년 희망제작소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그는 시민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지역 소상공인 및 취약계층의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다. 2011년에는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극적인 단일화를 이뤄 10·26보궐선거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이후 2년7개월간 서울시를 이끌며 토건사업을 지양하는 대신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협동조합 등을 통한 시민참여 시정에 주력했다. 지난해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 등 악재도 있었지만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사태를 원만히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당선자는 지방자치법 관련 규정에 따라 5일 0시를 기해 시장 업무에 복귀했다.
최정욱 기자 jwchoi@kmib.co.kr
박원순 당선자… 인권변호사에서 ‘서울시 수장’ 연임
입력 2014-06-05 0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