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당선자… 고향 제주에 도지사로 화려한 컴백

입력 2014-06-05 04:35
새누리당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는 4일 당선 확정 직후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제주도지사로 일할 기회를 주신 제주도민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선거를 통해 제주도민들이 제주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제주도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제주도를 확 바꾸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원 당선자는 고향 제주도에서 도지사로 화려하게 컴백하며 단박에 대권 후보 반열에 뛰어올랐다.

원 당선자 이름 앞에는 ‘수석’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닌다. 1982년 학력고사 전체수석으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1992년 사법시험에도 수석 합격했다.

그러나 정치 인생은 공부와 달랐다. 그는 현 여권 내부에서 줄곧 비주류 쇄신파 쪽에 섰다.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지나치게 튄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40세의 나이에 ‘최연소 최고위원’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1964년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생 때에는 책방을 운영하다가 문을 닫은 부모가 집에 쌓아놓은 책을 읽으며 자랐다. 어린 시절 리어카 바퀴에 발가락이 끼여 잘릴 뻔한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해 발가락이 뒤틀리는 장애를 안게 됐다.

빚 독촉에 시달릴 만큼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학업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제주 제일고를 졸업했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는 “가난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공부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런 그도 대학 1학년 5월 학교 도서관 앞 광장에서 열린 집회를 본 뒤에는 학생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대학 교정까지 장악했던 경찰 병력을 보면서 도서관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시위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다 경찰에 붙잡혀 유기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다.

다시 책상머리에 앉게 된 그는 시험 준비 2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현실 세계에서 좀 더 능동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고시 준비에 매달렸다고 한다. 4년여간 검사로 재직한 뒤 변호사로 활동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젊은 피’ 수혈 바람을 타고 정계에 입문했다. 그해 총선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공천을 받아 서울 양천갑 지역구에서 당선된 뒤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했다. ‘합리적·개혁적 보수’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소장파 목소리를 키워나갔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이 탄핵 역풍에 부닥쳤을 때에는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2004년 최연소 최고위원에 올랐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당시 이명박, 박근혜 후보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2010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기도 했다. 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그는 풀코스 마라톤을 8차례 완주한 아마추어 마라토너다. 고통을 참고 달리면서 제 페이스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