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학생 수백명이 희생된 경기도 안산은 표심마저 얼어붙었다. 전국 평균 투표율이 56.8%(이하 4일 오후 7시 잠정집계)를 기록했지만 안산 단원구는 47.8%에 그쳤다. 경기 부천시 오정구(46.1%), 충남 천안시 서북구(46.3%)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낮았다. 단원구에는 피해 학생들이 다녔던 단원고가 있다. 옆 동네 안산 상록구도 48.3%에 머물렀다.
안산과 진도의 표심
안산은 사전투표율도 8%대로 전국 최저 수준이었다. '정권 심판론'이 강하게 일 것이란 추측과 다른 결과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정부와 야당의 무력함은 이 도시에 정치적 냉소를 깊게 뿌리내렸다. 글로벌리서치 지용근 대표는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낮은 투표율로 이어졌다"며 "가족과 이웃을 잃은 마당에 국가에 기대할 게 없다는 무력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단원고 2학년 고(故)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딸의 영정사진을 들고 투표한 사진을 올렸다.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인 유씨는 "저도 예은이와 함께 투표하고 인증샷도 찍었습니다. 얼른 스무 살이 돼서 투표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투표장에 가게 됐네요"라고 적었다. 가족대책위 김병권 대표도 투표 후 "사고 진상조사와 안산시민은 물론 실종자 가족을 위해 끝까지 신경써줄 사람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단원고 교문에는 투표소 변경 안내문이 붙었다. 선관위는 애초 단원고를 제4투표소로 지정했으나 세월호 참사로 인근 안산유치원에서 투표를 진행했다. 아이 손을 잡고 투표소를 찾은 박모(50·여)씨는 "엄마의 입장에서 투표했다. 공약집도 꼼꼼히 더 따져봤다. 내 표가 제2의 세월호를 막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전남 진도의 투표 분위기는 엄숙했다. 안산과 달리 74.6%의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팽목항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김모씨는 "실종자 가족들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내 아이를 지킨다는 마음으로 투표했다"고 말했다. 김만호(74)씨는 "꿈을 펴보지도 못한 어린아이들을 생각해 제대로 된 안전 공약을 제시한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사전투표와 다르네" 투표소 혼선
지난주 사전투표는 주소지와 상관없이 아무 투표소에서나 투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은 주거지에서만 가능해 이를 헷갈린 유권자들이 발길을 돌리는 해프닝도 잦았다. 오전 6시10분쯤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민센터를 찾은 이모(21·여)씨는 '허탕'을 쳤다. 그는 "오늘 아무 데서나 투표가 가능한 줄 알았다"며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투표소를 검색해 찾아갔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 주민센터를 찾은 박모(42)씨도 "일하러 가는 길에 들렀는데 여기가 아니었다"며 "일 마치고 다시 투표소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유권자 가운데는 1단계 광역·기초단체장·교육감 투표만 하고 2단계 광역·기초의원 투표는 하지 않은 채 투표장을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시·구의원 후보들을 잘 몰라서 아예 기권을 택한 것이다. 오전 7시35분쯤 부산 대연3동 제7투표소에서는 50대 유권자가 기표소에서 투표용지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다 촬영음 소리를 들은 선거관리원에게 적발돼 휴대전화와 투표용지를 압수당했다.
일부 유권자는 비슷한 당명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서울 명동 제1투표소에서 남정북(73)씨는 "투표용지에 다른 당명은 다 하나씩인데 한나라당만 두 번 나온다"며 선관위 관계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새누리당의 옛 이름 '한나라당'을 당명으로 한 신흥 정당 때문에 혼란을 겪은 것이다.
세대 간 신경전도
온라인에서는 젊은층과 기성세대 사이에 신경전이 이어졌다. 투표를 마친 젊은 네티즌들은 SNS에 "아침 투표소에 어르신들뿐이다. 젊은이들의 투표가 절실하다"는 글을 잇따라 올렸다. 이에 장·노년 네티즌들이 "20∼30대 사전투표율이 50대 이상을 근소하게 앞섰다. 장년층이 투표해야 한다"며 맞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에서 노동당 참관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악수를 거부한 사실이 알려지자 "어른이 악수를 청하는데 거부하다니 무례하다"며 더욱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다.
김유나 조성은 기자, 진도=김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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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국민의 선택] 정치권에 불신·실망… 안산 표심마저 얼어붙어
입력 2014-06-05 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