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재일-국악인 한승석 앨범 ‘바리 어밴던드’ 발표

입력 2014-06-05 03:34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장충단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바리 어밴던드’ 쇼케이스 현장에서 정재일(사진 왼쪽)이 기타를 연주하고 한승석이 판소리를 하고 있다. CJ문화재단 제공

국악은 따분하고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원형을 보존해야한다는 명분으로 인해 대중에겐 ‘늙은 음악’이라는 인상이 있기도 하다. 특히 3분짜리 음악도 켰다 껐다를 반복하는 요즘 세대에게 서너 시간을 소비해야 판소리 완창을 듣을 수 있는 국악은 접근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각종 매체를 통해 화려한 볼거리와 서양 음악이 넘쳐나지만 대중이 국악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래서 이 소식이 반갑다. 가수이자 영화음악 작곡가,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는 정재일(32)과 국악과 교수이자 전통 소리꾼인 한승석(46)이 대중음악과 국악이 조화를 이룬 앨범 ‘바리 어밴던드(Abandoned)’를 발표했다. 전통 설화인 바리공주 이야기가 모티브. ‘버려졌다’는 주제로 새롭게 구현해낸 이야기들이 열 한 트랙위에 펼쳐진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장충단로 국립극장에 만난 두 사람은 “시대를 위로하는 노래를 우리말과 우리 음악을 통해 들려주고 싶었다”며 “우리만이 할 수 있는 노래가 생겼다는 의미에서 2년간의 작업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평가했다.

한승석의 소리는 판소리 특유의 휘몰아치는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 때론 발라드 가수마냥 부드럽고 유려하다. 정재일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흥을 돋운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아니리(장단없이 말로 연기하는 것)도 일품이다.

가사는 연극 ‘벽 속의 요정’ 등을 쓴 유명 극작가 배삼식(44)이 썼다. 두 사람은 “배 작가가 이메일로 가사를 보내주곤 했는데 글자의 배치만 봐도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 같았다”며 “자석처럼 술술 멜로디가 떠올랐다”고 극찬했다.

타이틀 곡 ‘없는 노래’에는 ‘구원의 노래(Salvation song)’라는 영어 제목이 붙었다. ‘슬픔도 없는 노래/ 아픔도 없는 노래/ 이 세상 어디에나 가득한 설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 노래’라는 가사로 위로의 메시지를 던진다.

빨래하는 바리공주의 이야기를 담은 ‘빨래 3’에는 유쾌한 가사가 서정적인 멜로디와 함께 등장한다. “비린내 지린내 노린내 구린내/ 사느라 부대껴 갖은 때에 절어/ 거리로 나서는 그대 집으로 돌아오는 그대/…/ 먼지 자욱한 뜬세상/ 허물없는 목숨이 어디 있으랴”

한승석은 “바리 설화에는 소외, 버려진다는 슬픔, 상처, 구원 등이 담겨있다”며 “한국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레퍼토리를 확장해보자는 생각에 옴니버스 구성을 떠올렸고 네팔 노동자의 이야기도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곡 ‘아마, 아마, 메로 아마(네팔어로 엄마 엄마 나의 엄마)’는 1992년 네팔인 불법체류자 마덥 쿠워씨의 과로사를 소재로 했다. 두 달 뒤 그의 사망소식이 고국에 전해질 때까지 냉동고 안에서 장례도 치르지 못한 가슴 아픈 실화가 담겼다. 국내에서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고 있는 네팔인이 직접 내레이션으로 참여했다.

한승석은 서울대학교 법학과 1학년 때 국악동아리에 가입하면서 국악인의 길을 걷게 됐다. 정재일은 14세 때부터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천재 음악 신동’이라 불렸고 밴드 긱스(Gigs)에서 활동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할 법하다.

앨범에 사용된 악기는 피아노, 전자기타, 통기타, 베이스기타, 바이올린 등 현악기부터 꽹과리, 태평소, 징, 장구, 풍경 등 동서양을 망라한다. 이 악기들이 선보이는 새로운 느낌은 앨범 곳곳에 묻어난다. 굿거리 장단이 피아노 선율로 표현되고, 기타 부문에선 거문고를 뜯는 ‘맛’도 난다. 드럼보다 힘차게 박자를 맞추며 어깨춤을 추게 하는 장구소리도 새롭다.

정재일은 “대중적이거나 혹은 한국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보단 자연스럽게 접근하자는 계획만 있었다”며 “작업 중 국악이 가진 고유한 선율에서 나오는 강력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앨범은 가사 전체가 영어로도 번역돼 해외 팬들을 만날 준비도 마쳤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