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거짓 영웅담

입력 2014-06-05 02:44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사이클 경기 ‘투르 드 프랑스’ 우승 트로피를 7차례나 들어올린 미국의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을 사람들은 ‘사이클 황제’라고 불렀다. 투르 드 프랑스 7연패라는 전인미답의 기록도 놀랍지만 폐와 뇌까지 퍼진 암을 극복하고 이 같은 대기록을 달성한 그의 인간승리 이야기는 세인들을 더욱 감동시켰다.

출중한 실력에다 역경을 이겨낸 스토리까지 갖췄으니 그는 롤 모델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그의 영웅담이 거짓으로 드러나기 전까지. 대기록은 약물의 힘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고 국제사이클연맹은 모든 기록을 박탈하고 영구 출전정지 결정을 내렸다. 영웅은 하루아침에 ‘세기의 사기꾼’으로 몰락했다.

얼마 전 또 한 명의 사이비 영웅 실체가 폭로됐다. 캄보디아 여성 인권운동가 소말리 맘은 2005년 펴낸 자서전에서 “할아버지에 의해 성노예로 팔려 중국 상인에게 성폭행당하고 14세 때 군인과 강제 결혼해 학대받았다”고 자신을 포장했다. 골드만삭스 등 세계 유명 기업들은 매년 수백만 달러의 기부금을 내며 그를 후원했다.

CNN은 그를 ‘영웅’으로 추켜세웠고,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9년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했다. 독일 롤란트 베르거 재단은 2008년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그에게 상금 100만 유로(약 13억9000만원)와 함께 롤란트 베르거 인간존엄상을, 포스코 청암재단은 2012년 청암봉사상을 수여했다.

그런데 지난 1일 자서전 내용 대부분이 거짓이라는 게 뉴스위크 보도로 드러났다. 자서전에 등장하는 할아버지, 중국 상인, 군인은 모두 가공인물이었다. 그는 성노예로 팔리지도, 성폭행을 당하지도 않았다. 언론의 현지 취재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는 진실이 어떻게 수년간 묻힐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검사’로 불렸던 안대희 전 대법관이 국민정서법에 가로막혀 총리직에 오르지 못했다. 검찰에 있을 때는 국민검사였는지 모르지만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시절은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검사라는 명성을 믿고 그를 지명했을 것이다. 그가 변호사 개업 후 5개월 만에 16억원을 벌었다는 사실을 대통령이 알았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사전에 알았다면 지명하지 않았을 것 같다.

박 대통령은 ‘국가 개혁의 적임자로 국민께서 요구하고 있는 분’을 후임 총리로 찾고 있다. 겉이 아닌 속을 봐야 제2의 안대희 사태를 막는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