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9월.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현 금융위원장)은 호기롭게 미국으로 떠났다.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좋은 조건으로 발행해 한국경제의 ‘9월 위기설’을 일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은 냉정했다. 월가는 다급한 우리 정부의 속내를 간파하고 ‘싫으면 말고’ 식으로 높은 금리를 불렀고 결국 정부 협상단은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6년이 지난 지금, 국제금융시장에서 ‘을(乙)’ 신세였던 우리 경제의 위상이 180도 달라졌다. 기획재정부는 4일 20억 달러 규모의 외평채를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처음으로 30년물 채권을 발행한 데다 발행금리 조건도 역대 최저인 2%대를 기록했다. 우리 경제의 중장기 성장 잠재력을 국제금융시장에서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이번 외평채는 30년 만기 미국 달러화 표시 채권 10억 달러와 10년 만기 유로화 채권 7억5000만 유로(10억 달러 상당)로 나눠 발행됐다. 발행금리는 30년물이 미 국채금리 대비 72.5베이시스포인트(bp·1bp=0.01% 포인트)의 가산금리가 적용된 연 4.143%, 10년물이 57bp 가산금리가 붙은 연 2.164%다. 주요국 중앙은행, 국부펀드 등 투자자들의 주문이 발행 규모의 4.5배에 달하는 등 수요가 넘치면서 가산금리가 정부 예상치보다 낮아졌다.
기재부는 우리와 국가신용등급이 유사한 칠레(109bp)뿐만 아니라 아시아 최우량 채권인 AAA등급의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91bp)보다도 낮은 가산금리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 15억 달러 규모의 10년물 외평채를 발행하면서 적용된 가산금리가 437.5bp였던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채권 만기 역시 2005년 4억 달러 규모 20년물을 발행한 것이 최장이었는데 이번에 이를 능가했다.
외평채는 환율시장 안정 재원인 외국환평형기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국채다. 이번 외평채는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25억 달러에 대한 차환발행(refunding·기존 빚의 원금을 갚기 위해 새로운 빚을 내는 것) 성격이다. 외화가 필요한 은행과 기업들에 향후 기준금리(벤치마크)를 제시하는 선도지표 역할도 한다. 이번에 최초로 30년물을 발행한 것도 민간의 초장기물 외화채권 발행을 유도하려는 목적이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한국, 급이 달라졌다… 사상 최저 2%대 금리
입력 2014-06-05 02:34 수정 2014-06-05 02:44